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8장 18-22절, 내려놓고, 머물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제자의 길로 도전

skch712 2024. 1. 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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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49(예수 따라가며)

 

(8:18-22, 개정)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치료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건너편으로 떠나자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본문 18에서,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아멘.

 

그때 한 서기관(율법학자)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간청합니다(19). 그때 예수님은 그 율법 학자에게 만약 나를 따르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안락한 집을 내려놓아야 하고, 사회적 보호막이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텐데도 나를 따를 수 있겠냐고 반문하셨던 겁니다. 제자의 길은 이처럼 순탄한 길이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제자의 길은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21)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발언이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장사 지내는 것은 최고의 선행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장사지내는 것은 자식의 도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큰일이 벌어져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예수 제자의 삶입니다.

 

본문 21 말씀을 오해해서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최우선 순위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호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물었던 제자 중 한 사람에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다른 가족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이유는 민수기 6에서 제사장하나님께 바친 사람에게만 예외허용되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6:6-7, 개정)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아멘.

 

예수님의 공생애는 3정도밖에 남지 않았기에 쉼 없이 사역을 이어가셔야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던 것처럼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에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모든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겁니다.

 

*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제자 삼으신 것은 이제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증인 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포기가 있어야 영혼에 집중할 수 있고,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삶은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믿음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돈 없고, 약자이고, 큰 죄인이라도 누구나 믿을 수 있기에 가장 쉽니다. 믿음은 쉽지만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많은 장애물을 통과해야 하기에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서 쉬운 것 같으나, 사실 그 길을 가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어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서기관처럼 예수님을 향한 아마추어식 믿음을 가지고 쉽게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쉽게 가는 길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주님을 불렀지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도전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제자의 길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가야 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죄인이기에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도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는 도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만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 신앙생활에만 안주할 때 신앙의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주님이 걸어가셨던 길로 함께 가자고 도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도전의 종교입니다. 도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자라지 않으면 죽은 것과 같은 생명력 없는 사망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죽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도전에 응답해야 예비하신 축복과 성장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실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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