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65장(주님께 영광)
(마 9:23-26, 개정)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사복음서는 시간순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기록하지 않아서 시간상 약간 혼돈이 되기도 합니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이 시간순으로 기록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만의 고유한 신학적인 특징을 가지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신앙교육 목적으로 썼고,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써서 사실적인 증언에 가깝게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은 기도의 영성이 강합니다. 요한복음은 제자훈련 교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복음서마다 독특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관리였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신 사건입니다. 그 전에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후 누가복음 7장 11-17절 말씀에서 장사 지내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기적은 온 지역에 퍼져 나갔습니다(눅 7:17). 그 소식을 회당장 야이로도 들었을 겁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마을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마 9:18-19, 개정)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아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다시 살리신 분이라면 분명 자신의 딸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가 간절하게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집을 향해 가다가 12년 동안 혈루증 때문에 아파했던 여인을 고쳐주시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참 귀한 일이지만 야이로의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35-36절 말씀과 누가복음 8장 49-50절 말씀에서는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더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동딸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자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때문에 치료받아야 하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너무 가슴이 아팠을 겁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던 주님은 누가복음 8장 50절에서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드디어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갔더니 이미 소녀가 죽어서 애곡하는 자들과 슬프게 피리를 불고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23절). 예수님은 소녀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아셨기에 장례식에 위로하러온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에 대해 비웃었습니다(24절).
예수님을 비웃는 무리 때문에 혹여나 부모의 마음도 동요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은 물러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23-24절). 부모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죽은 소녀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게 하고는 마가복음 5장 41절에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은 헬라어로 ‘탈리다 쿠미’입니다. 그 뜻은 “어린 소녀야! 일어나라!”
오늘 본문 25절에서는 예수님이 소녀의 손을 잡았을 때 벌떡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12살 된 소녀를 보며 놀랐습니다(막 5:42). 사람을 살린 기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으나(막 5:43)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다는 소문은 온 땅에 퍼지게 되었습니다(26절).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까지 예수님이 장례식에 가면 장례식이 사라지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어린 소녀가 잔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도하면 비웃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허튼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약속하신 말씀대로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살렸던 사람들도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회복은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치유를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비록 죽음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으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울고 있는 자들에게 오셔서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어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영원토록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받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신약 설교 > 마태복음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9장 35-38절, 천국복음 전파, 추수하시는 주님, 추수할 일꾼, 주님의 긍휼 (0) | 2024.01.11 |
---|---|
마태복음 9장 27-34절, 두 맹인,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 본질 사역인 복음 사역 (0) | 2024.01.11 |
마태복음 9장18-22절,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 옷자락의 의미,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 안심하라 (0) | 2024.01.09 |
마태복음 9장 14-17절, 금식에 대한 논쟁, 낡은 포도주 부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0) | 2024.01.08 |
마태복음 9장 9-13절, 마태, 세리, 죄인들, 의인을 부르러 온 것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0)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