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23장(어둔 죄악 길에서)
(마 9:27-34, 개정)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9장 27-31절 말씀은 두 맹인을 고친 사건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0장 29-34절 말씀에서도 맹인 2명을 고치는 사건과 너무 흡사합니다. 성경에 맹인이 많이 등장했던 것도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동쪽으로부터 극심한 모래바람과 지면에 수분이 늘 부족해서 석회석 먼지가 많아서 맹인과 안질 환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데 두 맹인이 따라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27절) 아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뜻하는 발언입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이 틀림없이 메시아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오실 때 눈을 뜨게 해줄 것이라고 이사야서 예언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 35:5, 개정)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아멘. 이 두 맹인은 들을 귀가 열려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맹인 보다 영적으로 어두운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비난하기 바빴습니다.
두 맹인은 사력을 다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27절) 외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28절). 마태복음 9장 28절에서, “집에 들어가시매”과 마태복음 20장 32절 말씀에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머물러 서서”라고 말씀했습니다. 두 맹인을 고친 사건이 전혀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맹인이 집요하게 집까지 따라 왔을 때 예수님이 묻습니다. “내가 능히 눈을 뜨게 해줄 줄 믿느냐?” 그러자 그들은 “주여 그렇습니다!”(28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29절)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의 눈들이 밝아질 수 있었습니다(30절). 이 두 맹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습니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 모든 질병과 영원한 죽음의 문제까지 구원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육체의 눈도 뜨고, 영적인 눈도 뜨게 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을 때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두 맹인에게도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30절). 영적으로 맹인과 같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기면서 가장 중요한 복음 사역에 지장을 받을까 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히 경고했던 겁니다.
예수님의 치료 사역은 선지자들이 예언을 성취하는 단면에 불과했고, 예수님의 사역의 진짜 핵심은 복음 사역이었습니다. (막 1:38, 개정)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아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렸어도 결국에는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치유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치유와 영원한 치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영생을 주는 복음 사역에 저해가 되는 요소들을 배격했던 겁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유 사역도 중요했지만, 진정한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역의 핵심 가치였습니다.
본문 32-33절에서,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본문 32절에서,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입술로 시인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귀신의 세력에 매인 사람이 귀신이 떠나가니까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귀신이 나가면 그 안에 가장 귀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에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도 복음 사역 못지않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겁니다.
문제는 바리새인들은 이 일을 보면서 본문 34절에서,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 발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영적인 맹인이었고, 귀신의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기는커녕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제가 노방 전도를 하다가 종종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꼭 옆에 있던 친구가 교회 다니면서 방해했던 가슴 아픈 경험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 영인 성령을 모독하고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막 3: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치료 사역과 귀신을 내쫓으셨던 것도 모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생을 얻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복음 사역이 예수님이 추구하셨던 본질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본질 사역인 복음 사역을 위해 기도에 힘쓰고,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는 깨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영원한 생명을 안겨줄 수 있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나누고 증거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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