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11장 1-6절, 세례요한의 물음, 메시아사상, 유대신앙의 한계, 예수님의 답변

skch712 2024. 1. 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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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63(이 세상 험하고)
 
(마 11:1-6, 개정)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마태복음 11-12장은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반응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음을 들었던 사람 중 첫 번째 이야기가 세례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 파송 교육을 마치시고,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며 전도하기 위해 다른 동네로 가셨습니다(1절).
 
본문 1절에서, 예수님의 중심 사역은 첫 번째, “가르치시며 헬라어로 디다케이고, 교육 집중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전도하시는 일 전념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예수님은 항상 기도를 기본적인 베이스를 깔고 있었기에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본문 2-3절에서,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유대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에 의하면 세례요한1년 동안 요새에 갇혀 있었다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의 친척이었던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면회 갈 법도 한 데 면회를 가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옥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2절). 세례요한이 자신을 따랐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과의 미묘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3세기까지 200년 이상 세례요한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기를 원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1장 36절에서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세례요한의 두 제자였던 사도 안드레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요 1:37).
 
둘째로,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도 같이 이뤄질 것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 3:10-12, 개정)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아멘.
 
메시아는 심판도 하셔야 하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보니 심판하시기보다는 겸손하게 사랑의 메시지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했기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마음을 헤아리셨던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 편에 그 질문의 답을 주셨습니다(4절).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아멘.
 
예수님은 이사야 35장 5-6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답해주셨습니다.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아멘.
 
이 말씀과 더불어 봐야 할 말씀이 이사야 61장 1절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아멘.
 
그런데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이란 문구를 본문 5절에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닌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죄인을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희생제물이었다면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마태복음 3장 10-12절에서 선포했던 대로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세례요한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본문 6절에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아멘.
세례요한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메시아사상을 바르게 인식하면 구원이 임합니다. 사랑의 종으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시대적인 요구와 반대에 부딪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복음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세례요한조차도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선지자였지만 주님이 정말 메시아가 맞는지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보낸 그의 제자들을 꾸짖거나 세례요한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하셨던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 신앙의 한계와 메시아사상의 한계를 가졌던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고 질문에 온화한 태도로 답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 모른다고 책망하지 않는 분입니다. 오히려 질문할 때 사랑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약 1:5, 개정)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아멘. 오늘 하루 우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세례요한처럼 예수님께 질문하고, 구하고, 응답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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