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12장(겸손히 주를 섬길 때)
(마 12:1-8, 개정)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배고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입니다(1절). 제자들이 남의 밭에서 밀을 잘라 먹은 일을 도둑질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신 23:25, 개정)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아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않는 이상 배고파서 이삭을 조금 잘라 먹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세율법에서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밀 이삭을 잘라 먹는 행위도 모세율법에 추수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율법 주석서인 ‘미쉬나’에 따르면 ‘안식일에 한입에 넣을 만큼의 이삭을 잘라 취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농경지들은 대부분 길고 좁다란 이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이랑 사이가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가 대략 1.8Km 안쪽이었는데 예수님의 전도 활동 범위은 넓었습니다. 안식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바쁘게 전도하러 다니다가 많이 걷고 시장하니까 고랑 옆에 있었던 밀 이삭을 잘라 먹었던 겁니다.
본문 2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행보를 얼마나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율법의 잣대로 선량한 사람들을 정죄하던 그들을 예수님은 그냥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 3-4절에서, 사무엘상 21장의 말씀을 들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변호하셨습니다. (삼상 21:6, 개정)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아멘. 모세율법에 ‘진설병’은 아론 가문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영원한 규례였습니다(레 24:8-9). 제사장 아히멜렉은 굶주린 다윗과 추종자들에게 ‘진설병’을 제공해줌으로 모세율법을 어겼다고 예수님이 변론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을 때 유대인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22절 말씀을 통해서 변론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아멘.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할례는 모세에게 나오지 않고 아브라함 때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고 살린 일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본문 5절에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아멘. 안식일에 제사장들은 번제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민 28:9-10, 개정)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아멘.
안식일에 제사장은 번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한 참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서, 안식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쉼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번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번제를 드렸던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죄를 어린양에게 전가해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죄가 덮어져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일하느냐 일하지 않느냐가 아니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은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던 겁니다.
본문 6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보다, 솔로몬보다, 유대인의 조상들보다 더 크신 분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제사 제도를 체계적으로 확립했던 모세보다도 우리 예수님이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모세 시대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회막과 왕국 시대의 성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광야 시대의 회막은 움직이는 성전이었고, 왕국 시대는 움직이지 않는 성전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영광의 구름이 덮였습니다. 제사 드렸던 이유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도 제사 드렸던 것은 안식일에도 진정한 안식과 참된 쉼은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교제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의 본질적인 핵심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 와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주님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된 죄의 벽이 허물어져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교제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셨기에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생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함으로써 영원한 생명과 참된 안식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7-8절에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아멘. 예수님이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셨던 것은 율법의 완성은 ‘자비와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호 6:6).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인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시고자 우리 대신 죄의 값을 담당하셨습니다. 참 제사장이셨던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참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안식일을 주관하시는 주인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다리로 연결해주신 예수님 때문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과 참된 쉼과 참된 위로와 회복이 가득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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