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15장 21-28절, 가나안 여자의 믿음, 헬라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 두로와 시돈

skch712 2024. 2. 1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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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05(나 같은 죄인 살리신)

(마 15:21-28, 개정)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의 마찰로 인해 복음 사역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위쪽 지역이었던 지금의 레바논 땅인 두로와 시돈 지역의 이방 나라로 건너가 복음 사역들을 이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예부터 무역으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룬 곳입니다(21절). 두로 왕은 물질주의에 빠져서 점점 교만해졌습니다. 두로 왕은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며 하나님 행세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두로 왕의 교만과 만행들을 지켜보지 않으시고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겔 26:4)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 아멘. 이렇게 “두로 성벽이 무너지게 될 것”이란 에스겔의 예언이 기록되고 나서 수년 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두로 성을 공격하여 성벽이 무너지고 그때 수천명이 800m 떨어진 섬으로 도망하여 새로운 두로를 건설했습니다. 그 후 250년이 지났지만 수백만 톤의 돌들과 자갈과 목재들이 아직도 무너진 옛 성터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이 새 항구 도시 두로를 공격하기 위하여 바닷길 800m에 둑을 쌓아서 길을 만들었는데 그때 옛 두로의 모든 성벽을 무너뜨리려 그 돌들과 재목과 흑을 다 물에 던져 넣음으로써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두로에 대해서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사 23:17)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아멘. 70년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었으나 옛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돈은 북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빠뜨렸던 이세벨과 연관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의 딸이었고, 시돈에서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를 권장했던 왕비였습니다.
 
이렇게 두로와 시돈은 돈의 신, 부의 신, 맘몬과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물질을 사랑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만든 우상숭배를 하며 자기만족과 유익을 추구하는 지역적 특색이 강했던 곳입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복음 전파가 어려웠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막 7:26, 개정)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아멘. 이 여인은 이방 여인이었으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딸의 병을 고치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22절에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아멘.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뜻은 ‘당신은 다윗의 자손이시고 구원자(메시아)’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대한 소문을 듣고, 자기 민족의 우상을 버리고 개종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간청하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는데 고쳐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가장 아플 때가 자식이 고통받는 것을 볼 때입니다. 태어날 때 그렇게도 예뻤던 딸이 지금은 귀신에 들려 개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히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는 그 여인의 마음은 너무도 아팠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참으로 싸늘했습니다. 본문 23절에서,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이 말씀은 이방 여인과 말을 섞지 않고 무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예수님의 본심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방 나라인 두로와 시돈 지역에 가신 이유가 복음 전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딸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더 크게 소리 지르면서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믿었던 이방 신들도 딸의 질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고쳐 주실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차갑게 반응하셨습니다.
 
본문 2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이렇게 딱 잘라서 거절하셨습니다. 이방 신을 믿는 자들의 특징은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믿음에 머뭅니다. 이사야 23장 17절에서, 교만해서 멸망 당한 두로 지역이 70년 뒤 다시 회복하신다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두로는 옛 습관을 쫓아 돈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다시 죄 가운데 빠져 살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곧바로 질병을 고쳐 주면, 잠시 고백했던 “주 다윗의 자손이여”(22절)라는 고백도 그때뿐인 믿음으로 전락할 수 있었기에 믿음을 키우기 위한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죄가 깊이 뿌리 내린 이방 민족들을 고쳐줘야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때뿐이었습니다. 회개 운동이 잠시 일어났던 니느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냉소적이고 절망적인 답변에 가나안 여인은 딸을 고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울며 간청합니다. 귀신이 나가면 결국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수 있기에 가나안 여인의 간구는 영혼을 살리는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영혼을 살리는 기도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어미로써 모욕감을 준 예수님께 오히려 겸손하게 절하며 도와 달라고 울며 간청합니다(25절). 이쯤 되면 예수님이 고쳐 주실 법한데도 고쳐 주시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너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과 함께 떡을 떼며 식사하는 유대 자녀와 같이 식사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본문 26절에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너는 이방인이고, 하나님의 영이 없는 부정한 짐승인 개들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죄의 종으로서 죄의 영향력 가운데 살았고, 우상숭배에 빠져있었던 이방인이 예배 공동체 가운데 낄 수 없다”는 발언이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까지 짓밟아 버리는 주님의 대답을 들었지만, 이 여인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영혼 사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7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아멘. 이 여인의 고백을 다시 재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주님! 당신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는 하나님의 영이 없는 부정한 짐승인 개였습니다. 죄를 벗 삼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부정한 짐승으로 살아왔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부정한 개이지만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부스러기 은혜를 저에게도 던져 주세요.” 이렇게 가나안 여인은 죄 가운데 있었던 자신의 실존을 인정하며 진실한 회개와 간구를 주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드디어 우리 주님께서는 본문 28절에서, 헬라어 원문에 보면 “!”라고 감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이렇게 예수님은 감격하고 감탄하시면서 가나안 이방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이방 여인의 믿음이 더 커지도록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한 이방 여인에게 예수님은 왜 그토록 모질게 대하셨을까요? 그것은 두로와 시돈물질주의에 빠져있었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방 나라였기 때문에 지금 딸을 고쳐줘도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일시적인 문제들이 또다시 찾아오면 옛 습관을 쫓아 우리 예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다시 섬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하시면서 그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한 예수님의 배려와 사랑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두로와 시돈 지역과 같은 물질주의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혼합적 우상숭배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신앙을 지키기 힘든 사회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풍요 속에 신앙의 빈곤이 찾아왔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힘든 시대에 오늘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우리 신앙을 견고히 세우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을 더 가까이하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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