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75장(신랑 되신 예수께서)
(마 25:1-13, 개정)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마태복음 25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언과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마태복음 25장은 크게 3가지로 나눠집니다. 1~13절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14~30절은 달란트 비유로서 재림을 준비하는 자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맺으며 충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31~46절은 재림으로 말미암는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 예식은 저녁에 이루어졌습니다.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와서 종교의식을 행한 뒤 신부와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가서 결혼 잔치했습니다. 이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부의 들러리로 신랑을 혼인 잔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고, ‘열 처녀’는 모든 믿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결혼을 위한 중매로 표현했습니다. (고후 11:2, 개정)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아멘.
대부분 가정은 남편이 누구냐에 따라 아내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남편이 군대에서 별 하나 단 장군이면 아내는 별 4개 단 대장이 됩니다. 남편이 사장님이면 아내는 회장님이 됩니다. 남편이 돈이 많으면 아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랑이 되실 분은 이런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깨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신실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 5절에서, “신랑이 더디게 왔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재림을 예언하시고,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빨리 오시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예수님은 더디게 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 속히 오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시기도 했지만(계 22:20) 오늘 본문에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 더디게 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더디게 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큰 계획이기에 그 뜻을 다 헤아리기는 힘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예수님이 더디게 오시니까 지치기도 하고 열 처녀처럼 잠시 졸 수도 있습니다. 본문 5절에서, “다 졸며, 잘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졸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재림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힘든 마라톤과 같아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을 본문 4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아멘.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깨어 있는 신앙은 ‘기름을 담아 준비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재림의 주님이 더디게 오시기에 잠시 졸 수도 있겠지만, ‘기름을 담아 준비’하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기름을 담아 준비했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미 준비된 기름이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이 꺼져가는 것을 보면서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에게 부탁합니다(8절). 그러자 본문 9절에서,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이 말씀에서 ‘기름’은 성령이라고 신학자들이 말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중심에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생명력이 넘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자들은 성령 안에서 그 음성에 순종하며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는 자들입니다.
구원의 진리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파는 자들에게 가서 기름을 사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기름’은 사는 것입니다. 노력과 땀으로 사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훈련을 통해 ‘기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을 사기 위해 물질을 투자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열정을 투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은 누구에나 주어지지만, 유정란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부화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자라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파는 자’가 상징적으로 구원의 진리와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가르치는 선지자들과 복음의 일꾼인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 잘 때, 기도했고, 말씀 읽고, 전도했던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무관심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한 영혼에 집중하여 성령의 이끄심대로 순종했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답게 신앙생활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슬기 있는 처녀는 준비하는 성도입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입니다. 내 방법,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성도입니다. 바로 이런 성도가 슬기 있는 성도입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인내하며 기다렸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예비하신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을 견디기도 하고 슬픔을 참기도 하고, 환난과 핍박을 견디기도 합니다. 그동안 수고했던 것을 천국 잔치에 들어가 보상을 받게 되고 악인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이 닫힙니다(10절). 노아 시대에 홍수가 시작되자 방주 문이 닫히듯이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때늦은 후회를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본문 11절에서,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본문 12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오실 재림의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고 주님은 경고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더디게 오고 있습니다. 더디게 주님이 오시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형식적으로 빠질 수 있고, 신앙이 나태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삶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교회만 다니는 신앙생활을 가지고는 어떠한 구원의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재림의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문을 닫히기 전에 말씀 훈련, 복음 훈련을 꼭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 7:21, 개정)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멘. 하나님의 뜻은 영혼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령의 기름은 말씀 충만이고, 복음 충만이고, 영혼 구원의 충만입니다. 마지막 때에 깨어 있는 성도, 준비하는 성도, 살리는 성도, 슬기 있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