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30장(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출 2:11-25, 개정)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아멘.
*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지난 주일에 나일강에서 구원받은 모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했던 한 가정을 통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의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한 후에도 모세가 장성할 때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로부터 나일강에서 건져지고 양자가 되었습니다. 친누나 미리암 기지를 발휘해서 바로 공주에게 유모를 친모인 요게벳을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요게벳의 품에서 모유를 먹고 자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신앙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모세는 장성했을 때도 야훼 신앙을 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게 됩니다.
그 사건이 본문 2장 11-12절 말씀입니다.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아멘. 이렇게 모세는 이스라엘 동족이 애굽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면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동족을 위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춥니다’ 아직 모세가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살인을 저질렀던 겁니다. 그가 왕궁 생활을 하며 애굽 왕자로써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가 너무도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돕다가 저질렀던 살인 사건은 애굽 편에 서지 않고 이스라엘 편에 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열심은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살인은 십계명을 어기는 범법 행위입니다. 내가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 성숙한 삶입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봤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라보는 삶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자라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스라엘로 정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힘으로 구하려고 시도하다가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아직 성숙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된 노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 모세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모두가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살인죄를 짓고 바로 왕을 피해 광야 길로 정처 없이 떠나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 시키셨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40년간 왕궁에서 애굽 왕자로 살면서 화려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모세가 하는 모든 일은 애굽의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도망친 광야에서는 아무도 모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외롭고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이 추구하고 배웠던 애굽 왕궁의 생활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왔지만, 광야에서의 삶은 왕궁에서 배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에게는 일곱 딸이 있었는데(16절) 그중에 십보라와 결혼해서 첫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어준 ‘게르솜’이라는 이름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뜻입니다(22절). ‘나그네’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모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했습니다. 모세는 ‘나그네’ 신세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능력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그 어깨의 힘을 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리더를 광야대학에서 준비시키고 훈련 시키셨습니다.
한편에서는 고된 노역과 애굽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던 이스라엘도 준비시키고 바꿔 가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모세와 똑같이 애굽이라는 광야 학교에서 훈련 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동과 애굽의 압제 속에서 한계 상황에 다다랐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앞으로 이끌고 나갈 지도자 모세를 다듬어 가셨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애굽에서 나오기 위한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준비시켜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드십니다.
여러분 중에서 어떤 일을 할 때 잘 풀리지 않고, 막히고, 힘들고,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찾아온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다듬어가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 있게 됩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으로 바뀔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놀라운 계획 속에서 양쪽 모두 준비시키셨습니다. 만약 수레바퀴가 하나라도 고장 나면 그 자리를 맴돌 듯이 영적인 리더와 성도들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리더와 성도가 함께 성숙해야 앞을 향해 전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다루셨던 광야 학교의 훈련 과목은 ‘나그네’였습니다. 모세가 게르솜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나그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애굽 땅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거할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할 땅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예배하며 살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이 땅의 축복은 부요함에 있지 않습니다. 뭔가 부족하고, 없기에 하나님께 날마다 간구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도 애굽 땅과 같이 세상에 안주하며 사는 환경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은 바로 ‘나그네’ 인생을 자처하는 삶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을 알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이 복된 인생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서 모세도 이스라엘도 ‘나그네’ 생활 중에 가장 힘들고 고독한 시기를 겪게 됩니다. / 나그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가난함입니다. 가난하면 주리고 배고픕니다. 배가고프면 눈물이 나고 애통하게 됩니다. / 이렇게 고난 속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 인생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본문 22절에서, 자신의 삶이 나그네 삶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본문 23절에서, ‘탄식하고 부르짖으니’라는 그 고백 속에서 드디어 하나님을 찾습니다.
* 여러분~! 인생은~ 나그네 길~ 이런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인생이 아닙니다. 잠깐 왔다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짧고 허무한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이유는 바로 나그네 인생길에서 결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4~25절에서,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아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기 위해 각자의 환경 속에서 광야대학을 준비시키셨던 겁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세의 가장 화려했었던 이집트 왕자라는 ‘힘을 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고된 노동을 통해서 ‘힘을 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찾게 만드셨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나는 없고, 주만 있는’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멀리하십니다. 주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애굽인지, 광야인지, 가나안 땅인지를 살펴보고, 좌우를 살펴 옆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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