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86장(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요 15:14-17, 개정)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본문 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여기서 ‘친구’는 헬라어 원문으로 ‘필레오’입니다. ‘친구 간에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사랑하는 친구다”라고 번역해도 무방합니다.
예수님을 3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맛있는 아침을 먹이신 후에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5)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의 ‘무조건 적인 사랑’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필레오’의 ‘친구 간의 사랑’으로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도 예수님이 ‘아가페’의 사랑을 물어보셨지만, 베드로는 ‘필레오’의 사랑으로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필레오’의 사랑을 물어보셨고, 베드로는 ‘필레오’의 사랑으로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말씀하지 않고, ‘필레오’의 사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친구 간의 사랑은 우리말로 우정입니다. ‘우정’은 친구 사이의 나누는 정을 말합니다.
즉, 친구 사이는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무 조건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필레오’의 사랑이라도 행할 것을 요구하셨던 겁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두 번씩이나 요구하셨을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했던 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막 14:31, 개정)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단호하게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3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향한 확고한 ‘아가페’의 사랑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며 생명의 복음을 나누며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내가 너희를 죽기까지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필레오’의 오가는 ‘우정’ 같은 사랑을 할 줄 알아야 ‘아가페’의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아멘. 이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종이 아닌, 주님과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 알려 주셨던 것은 제자들을 친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였기에 ‘주님의 계명’인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성령을 받게 될 제자들은 능히 ‘주님의 계명’대로 희생적인 사랑으로 섬기면서 영혼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항상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때 다 응답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1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부리는 종으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우정을 나누는 절친한 친구로 우리의 아픈 속마음을 모두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친구이신 예수님과 친밀하게 사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기쁘게 사는 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영혼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주님의 참 제자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