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16장(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요 16:32-33, 개정)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대신할 성령을 약속하시며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홀로 남겨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32절에서,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아멘. 스승을 잃게 될 제자들만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예수님 홀로 남게 될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마음도 힘들고 아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잃게 될 제자들만 힘든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 사랑으로 제자훈련 시켰던 제자들에게 버림받아야 하는 상실감을 그대로 표현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우리만 힘들다고 어렵다고 예수님께 어리광을 부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외롭게 홀로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마음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본문 32절 하반절에서,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상실감이 찾아올 때가 이제 곧 오겠지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께서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일체의 비결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백처럼 우리도 함께 믿음의 고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아멘. 맞습니다. 아무리 상처받고 힘들어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임할 큰 환난도, 우리 삶에 닥쳐오는 상처와 아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롬 8:37, 개정)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본문 33절에서, 예수님이 지금까지 구구절절하게 고별 설교를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임할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 가운데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이긴다는 믿음을 놓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는 상상 그 이상의 박해였습니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제자들이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3절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세상에서 제자들이 환난을 당한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환난’은 헬라어로 ‘틀립시스’로써 ‘압박, 상처받은, 고뇌, 핍박, 고통, 억압, 짐진’이란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받고, 예수님을 버리는 연약한 모습 때문에, 초라한 너희 자신을 보며 고뇌하지 말고, 담대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본문 33절에서 ‘담대하라’는 헬라어로 ‘탈세오’입니다. ‘탈세오’는 ‘용기를 갖다, 격려하다, 위로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담대하라!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용기를 가져야 돼! 왜냐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죄로 인한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꼭꼭 숨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눅 24:36, 요 20:19, 21, 26). 배신한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과 똑같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의 부활로 제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평안, 헬라어로 ‘에이레네’ 안식과 하나 됨의 뜻을 가진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극복할 수 없었던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은 부활로 정복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죽음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죽음을 등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잔다”(마 9:24, 막 5:39, 눅 8:52)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죽음은 ‘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잠시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고난의 한 가운데 있어도 이김을 주시는 “예수님이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과 항상 거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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