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장(천부여 의지 없어서)
(요 18:25-27, 개정)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25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의 뜻은 ‘듣는 자, 복종하는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바위, 반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요 1:42, 마 16:18).
‘시몬’이라는 이름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뀐 배경이 마태복음 16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황제의 도시였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물으셨을 때, 수제자였던 ‘시몬’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이 ‘시몬’을 칭찬하시면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부여해주셨습니다.
또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반석 위는 곧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반석과 같이 굳건한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이 바꿔주신 ‘베드로’라는 이름만을 쓰지 않고, ‘시몬’이라는 옛 이름을 더불어 기술했습니다. ‘시몬’의 이름에 뜻과 같이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면서 수제자가 될 정도로 ‘잘 듣고, 복종’했던 ‘시몬’은 ‘반석’과 같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 인정받았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려고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던 말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시대 때 언론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마음과 별반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심문당하실 때 떳떳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꺼내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을 쬐던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묻자 부인하며 ‘나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25절).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6-27절에서,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한 마지막 만찬에서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베드로는 결국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마 26:34, 눅 22:34, 요 13:38).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한 제사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중간 역할을 하는 대제사장에게도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받으셔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3번씩이나 버림받아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으시고 수난을 당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십자가는 죄를 심판하는 자리였기에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받아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에게도 버림받아야 했고, 사랑하는 제자에게도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자리는 죄 없으신 예수님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지은 우리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대신 버림받아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셨던 겁니다.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는 베드로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던 이유를 헤아려보자면, 예수님이 죽을 위기에 놓이니까 그토록 의지했던 예수님을 더 이상 의지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던 겁니다. 예수님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고, 버틸 힘이 사라진 것과 같았기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씩 부인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은 믿고 사랑하던 사람을 잃거나 사라졌을 때 방향성을 잃게 됩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의 본질적인 내면을 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주님의 끝없는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흔들리는 반석이었기에 ‘베드로’라는 ‘반석’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고전 10:4, 개정)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아멘. 아무리 ‘반석’과 같은 좋은 신앙을 가져도 언제나 연약하기에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종이’처럼 연약한 우리가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석’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의 흔들리는 믿음을 비웃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약점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항상 말씀을 걸어오시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늘 외면하고 베드로처럼 부인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영락없이 흔들리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죄 없으신 예수님의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죄지은 우리의 자리입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철저히 버림받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졌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나 때문에 울 수 있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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