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복음 설교

요한복음 20장 11-18절, 다시 복음 앞에,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열정과 눈물, 부활의 증인

skch712 2024. 8. 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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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저 장미꽃 위에 이슬)

 

(20:11-18, 개정)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던 예수님 곁을 지켰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무덤까지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사람이기에 예수님이 죽고 장사 된 무덤 앞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은 예수님을 간절히 찾게 만들고 눈물을 가져다 줍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인이었기에 천대받았고 일곱 귀신까지 들렸던 자였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쓰레기 인생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셔서 일곱 귀신을 다 내쫓아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고, 그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주셨던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곁을 지켰습니다(19:25).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지낸 후에도 가장 먼저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마리아였습니다(20:1). 예수님이 죽었어도 마리아는 예수님에 향한 열정과 사랑이 식을 줄 몰랐습니다.

 

본문 11에서, 마리아가 울고 있더니라는 말은 헬라어클라이오입니다. ‘대성통곡을 하면서 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립고 너무나 보고 싶은데 못 보니까 엉엉 울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부활의 예수님을 경험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마지막으로 한번 만져 보고 싶었는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으니까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순수한 사랑과 열정은 눈물로 표현됩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열정과 순수한 사랑의 눈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과 눈물은 우리를 다시 복음 앞에 세워 놓습니다.

본문 12~17에서,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에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했던 열정과 사랑의 눈물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제자들보다 마리아가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사랑의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8:17, 개정)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아멘.

 

본문 12~13에서, 마리아가 천사를 보고도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사를 보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가 원하는 것은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원했습니다. 마리아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고, 일곱 귀신을 내쫓아 주셨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셨고, 사랑해주셨던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마리아의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었기에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만나 주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본문 15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아멘. 이렇게 마리아는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시체가 부정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지키려는 열정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비록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잊어버려서 이러한 결과들이 생겼지만, 그 순수한 마음과 열정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있어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우리 삶에 변화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기쁨과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을 만나야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과 눈물은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만듭니다.

본문 16에서,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아멘. 예수님에 대한 열정과 눈물이 결국, 부활의 예수님께서 사랑의 속삭임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고2 때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선규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선규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리는 줄 아느냐?” (멈출 수 없는 회개의 눈물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속삭임을 듣고, 주의 종에 길을 가야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본문 15에서, 예수님이 여자여라고 불렀을 때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니까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마리아야라는 말에는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다. 내가 너의 아픔을 안다. 마리아야, 내가 너의 삶을 안다.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 내가 너를 안다.’ 어쩌면 예수님도 마리아를 바라보시면서 우셨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마리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예수님의 따스한 음성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그 마음속의 상처가 다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든 이유가 삶 속에서 만나야 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있는 것 같은 외로움, 두려움, 비교의식, 사랑받지 못한다는 상실감, 상처와 아픔들은 모두 주님을 만나면 다 치유되는 것들입니다. 이 시간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과 눈물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본문 17~1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본 것과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나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부여해주신 그 이름 예수님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내가라고 말하지 않고, 오직 예수!’라는 이름만 부르시길 바랍니다. 멈출 수 없는 눈물을 그치게 만들었던 능력의 이름, 소망의 이름, 기쁨의 이름이신 부활의 예수를 마리아처럼 마음껏 외치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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