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25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요일 2:9-11, 개정)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지난번에 옛 계명과 새 계명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구약의 옛 계명과 신약의 새 계명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옛 계명과 새 계명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옛 계명과 새 계명의 차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이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계명의 내용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에 모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어도 가시적으로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강력하게 방해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참된 증거는 서로 사랑할 때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아멘. 이처럼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어둠에 거하며 구원과 동떨어진 성령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령님은 등불과 같은 존재이십니다. 그분의 비춰주시는 빛 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서,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교통하시는 성령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과 날을 세우고,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있다면 본문 11절 말씀처럼,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성령님과 대치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을 올바르게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라고 디모데 후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 3:16, 개정)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아멘. 성경을 기록한 40명의 저자가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혀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받아 적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 119:105, 개정)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아멘. 성령님의 비춰주심이 없으면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날을 세우고, 대치 상태로 있으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과 대치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치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고 영적인 방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인가 거리낌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낌이 있다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사랑하지 못하고 용하지 못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결국 영적인 위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위선자는 영적 위선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좀 먹게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방황도 옵니다. 정신적인 방황은 우리에 육체에도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행위는 곧 자살 행위인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왜 방황하고, 중언부언하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지 세상 사람들은 영적 원리를 잘 모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인 방황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우리 가족과 직장 동료와 교회 성도들과 관계 속에서, 거리낌 없는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 나갑니다.
물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희생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용납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끝없는 용서해주시고 용납해주십니다. 우리도 성령이 주시는 그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심스럽게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현재 미워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내가 어떤 분을 미워하고 있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아파하면서 신음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뿐 아니라 내 영혼도 점점 말라비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합니다.
빛 대 어둠, 사랑 대 미움, 이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원수 같은 그 화상들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용서하시고 용납해주신 십자가를 제발 바라봐야만 합니다. 아직도 미움에 사로잡혀 어둠 가운데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아파하시면서 울고 계십니다. 그 흐느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영적인 민감함입니다.
나를 병들게 만드는 미움을 밟아 버리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면서 참된 평안 가운데 승리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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