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6장(구세주를 아는 이들)
(요 7:1-13, 개정)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초막절이 다가왔습니다(2절). 그때 예수님은 유대 지방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1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막절을 지내기 위해 한창 바쁘게 보내고 있었을 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찾아와 그럴싸한 제한을 합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리둥절하며 제자들도 많이 떠났던 터라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명절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유대로 가서 뭔가 기적을 보여줘서 예수님을 알릴 기회로 삼고 명예를 회복해 보자는 그럴싸한 제안이었습니다(3-4절).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떠난 것이 명예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단지 유명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널리 알려서 명성을 떨치고, 선한 일로 세간에 존경을 받고 더 많은 기적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 할 때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착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면서 내가 바라고 원하는 때를 하나님의 때로 이끌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교만이기도 합니다. 3대 절기 였던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예수님의 형제들의 생각대로 기적을 행하면 정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때를 우리가 정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가장 정확하고, 문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6절).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했기 때문에 중요한 사역의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7절).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행위가 모두 외식 적이고 악하다고 정면으로 지적하셨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위선을 정확히 꼬집으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도 눈에 가시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고부터 유대 지도자들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경계해도 예수님을 향한 칭송이 날로 높아지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사역이라서 아직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제자훈련도 아직 미흡한 상태였고, 영적인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떠날 때 제자들은 신앙의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많은 사람 앞에서 몇 가지 기적만 보여주면 온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만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해서 선포하면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게 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 복 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은 잘 믿고 따릅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아를 죽이고, 생명을 나누라는 주님의 명령은 따르기가 어렵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떠난 뒤 그들 모르게 예수님은 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10). 초막절을 지켜려고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행방을 찾고 있었고, 백성들도 예수님의 거취를 궁금해했습니다(11절).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고, 그 가르침에 칭찬하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12절).
그나마 예수님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자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유대인들을 미혹하는 이단이라고 매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생명의 말씀을 들었고,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기꾼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이신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는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현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항상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에 맞게 순종하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때에 순종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생명을 나눌 수 있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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