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11-12절,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8, 사순절, 짜증과 신경질,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는 고집
368장(주 예수여 은혜를)
(마 15: 11-12, 개정)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죄가 있습니다. 짜증과 신경질을 내는 죄입니다. 보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을 때 짜증과 신경질을 냅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감정을 건드리는 말을 들었을 때 짜증이 납니다.
얼마 전 제가 교회 방송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방송 일이 잘 안돼서 옆에 있던 아내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에 깜짝 놀라서 “당신에게 짜증 부린 것 용서해주세요”라고 사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짜증은 행복한 가정을 깨뜨립니다. 짜증과 신경질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직장이나 교회에서도 자주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면 대인 관계가 깨집니다. 사탄의 전략 중 하나가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려서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공동체 안의 평안과 사랑의 교제를 파괴 시킵니다. 우리는 짜증 내고 신경질 부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짜증이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모두가 마음에 안 들기에 짜증이 납니다. 둘째로, 타인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짜증이 납니다. 셋째로, 내 의도와 타인의 의도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짜증이 납니다. 결국 짜증을 내는 이유는 내 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안 좋아서 짜증을 낸다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질은 우리 내면에 악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피곤이나 날카로운 신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심신이 지쳤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짜증을 합리화해서도 안 됩니다. 짜증 나고 신경질이 날 때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짜증 내고 신경질 부리다가 사람을 죽인 가인이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물을 받고, 자기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자 화가 났습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창 4:6-7, 현대어) “(6)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셨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느냐? 어째서 안색이 변하였느냐? (7) 네가 잘하였다면 어째서 내가 네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어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느냐? 네가 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죄가 네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급기야는 너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는 가인의 잘못된 행동을 잘 타일렀으나 그는 더욱 짜증 내고 신경질적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가인은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두 계보가 존재합니다. 내 맘과 내 뜻대로 예배드리는 가인의 계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성껏 예배드리는 아벨의 계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짐승의 피로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원칙이었습니다. 피의 제사는 예수님을 예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 뜻대로 곡물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려고 했습니다. 가인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께 짜증 내고 신경질을 부리다 결국 사랑하는 동생까지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짜증과 신경질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짜증과 신경질의 죄를 멀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며 짜증 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다고 짜증 냈습니다. 양식이 없다고 짜증 냈습니다. 만나가 질렸다고 짜증 냈습니다. 수없이 많은 짜증을 하나님께 부리다가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요나서 4장에서, 요나 선지자는 원수 나라 니느웨 성읍에 일어난 회개의 부흥이 못마땅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짜증 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반겼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재산을 탕진한 못된 동생을 선대 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했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께 짜증 내며 신경질을 부린 모습이 요나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영혼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이 가득했던 유대인들은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살리고자 그들 안에 숨겨진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드러나야 회복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가인처럼 하나님의 명령보다도 자기들이 만든 장로들의 전통을 고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다고 따졌습니다(마 15:2). 그때 예수님은 인간의 계명으로 바꾼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기에 잘못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셨습니다(마 15:3-9).
손을 씻으라고 한 장로들의 전통은 전염병을 예방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진짜 죄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부패한 마음과 죄 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11절). 예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들었던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걸림이 되어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며 더욱 예수님께 반항했습니다(12절).
짜증과 신경질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 말씀들을 함께 나누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약 1:19, 개정)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아멘. (고전 13:4-5, 개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아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을 사랑하면 오래 참고 짜증과 신경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무서운 죄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눅 5:32, 개정)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아멘. 우리는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짜증과 신경질의 죄를 예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죄의 질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는 복된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저를 따라서 한 마디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순간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신경질을 부리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짜증과 신경질에서 건져주시고, 서로 오래 참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