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23절,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20, 사순절, 까다로움, 자신을 섬기려는 마음의 병, 여러 가지 악을 낳는 죄
250장(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마 23:23, 개정)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죄가 있습니다. 까다로움의 죄입니다. 우리 자아가 병들면 까다로워집니다. 까다로움은 여러 가지 악을 낳는 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모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아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의 핵심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습니다. 대신 ‘적은 양의 채소’ 십일조를 정확하게 따져서 내는 것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채소를 하나하나 계산하다 보니 정작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할 가난한 이웃을 돕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다가 본질을 놓치고 맙니다.
물론 예수님은 채소의 십일조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기에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버리지 말라고 직접 말씀하신 본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까다롭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좋아했습니다. 율법의 본래 정신보다는 형식과 전통을 까다롭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습니다. (눅 11:46, 개정)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아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께 나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3절,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아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까다롭게 지키기 위해서 장로들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 아닌, 자신 들의 입장에서 율법을 조작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대해서 이사야 29장 13절에서는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손을 씻지 않아서 걸리는 육신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죄의 질병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까다로움이 오히려 ‘자기를 섬기려는 마음의 병’에 빠지고 맙니다.
까다로움의 대명사였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화’가 있을 것이고,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했습니다(마 23:27). 바리새인들이 까다로웠던 것은 자기들의 부패한 마음을 감추려는 연막전술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운 까다로운 규칙들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까다로움은 하나님 나라의 길을 막습니다(마 23:13). 이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까다로움이 결국 예수님을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까다로움의 죄를 멀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까다로움의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까다로운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롬 13:10, 개정)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아멘. 율법을 까다롭게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까다로운 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자비와 긍휼을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마 9:13, 개정)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멘. 까다로움의 잣대를 남에게 재지 말고 남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셔서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셋째로, 까다로움의 짐을 내려놔야 합니다. (마 11:28-30, 개정)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멘. 까다로움의 죄 짐을 모두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에서 내가 죽어야 까다로움의 죄에서 완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외적으로는 까다롭게 지켰으나, 내적인 본질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까다로웠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책망받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까다로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행위입니다. 남을 죽이는 까다로움의 죄를 멀리하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저를 따라서 한 마디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까다로운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옵소서. 까다로워질 때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까다로움을 못 박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