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4장 23-35절,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라
384장(나의 갈길 다 가도록)
(삼상 14:23-35, 개정)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27)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요나단은 용기 있게 믿음으로 적진에서 싸운 그곳에서 하나님은 지진을 보내셨습니다. 요나단의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으로 바뀌면서 싸움의 판도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에게 넘어왔습니다.
본문 2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아멘. ‘벧아웬’의 이름 뜻은 ‘헛된 것의 집, 죄악의 집, 우상숭배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블레셋이 ‘벧아웬’ 점령하면서 ‘죄악의 집’이 되고 말았는데 그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전쟁에서 승리했고 회복되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사울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과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기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좀 성급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저녁까지 원수였던 블레셋을 보복할 때까지 음식물을 먹지 못하도록 했습니다(24절). 그 이유는 지금까지 사울은 왕으로서 제대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게 된 것도 요나단의 용기 있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무언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길 원했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아버지의 명령과 맹세를 듣지 못했습니다. 본문 27절에서,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아멘. 요나단은 꿀을 먹고 힘이 생겼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백성 중 한 사람이 요나단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28절)
요나단은 아버지의 맹세를 듣고 본문 29-3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사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물을 먹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으나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곤란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울의 명예를 위한 맹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힘들게 했고, 블레셋을 치는 일도 방해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을 드러내면 하나님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의 맹세가 두려워서 전쟁 중에 어떤 음식도 먹지 않고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피곤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해가 떨어지면 전쟁을 할 수 없었기에 밥 먹는 시간을 더 이용하려는 사울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까지 거리가 약 24km의 거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중심부 지역까지 쳐들어왔던 겁니다. 사울은 적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사울의 욕심이 화를 불러왔습니다. 사울이 명령한 금식할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탈취물 중에서 ‘양과 소와 송아지’를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서 피째 먹고 말았습니다(32절).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의 명령을 지키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창 9:4, 개정)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아멘. 레위기 19장 26절에서도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7장 11절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33절에서, 무리가 말합니다. 사울 ‘당신의 명령을 따르다가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 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믿음 없이 행했다고 책망하면서 큰 돌을 굴려서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왜냐하면 잡은 고기를 큰 돌 위에 올려놔야 피가 더 잘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은 이후에 자신의 맹세를 어긴 요나단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군인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명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겁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더 앞서 있었습니다.
본문 35절에서,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아멘.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하며 감사의 제사를 처음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도 잘못된 제사였습니다. (신 12:13, 개정)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아멘. 족장 시대인 아브라함 시대 때는 아무 데나 제사를 올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지정된 장소에서 제사를 올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 제도를 어기고 말았던 겁니다. 사울은 제사하는 것조차도 하나님보다 앞서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은 음식물을 먹지 않고 원수와 싸우겠다는 맹세를 하며 신앙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보다도 자기가 더 앞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보다도 자신의 명령이 더 중요했습니다. 사울은 결국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앞서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앞서가셔야 참된 승리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보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실 수 있도록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