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0장 35-42절, 사울에게서 도망치라는 요나단의 신호, 다윗과 요나단의 작별 인사, 서로 살려주는 빛나는 관계
(삼상 20:35-42, 개정)
(35)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36)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37)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38)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9)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40)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41)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과 요나단이 작별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확인했던 요나단은 정한 시간에 다윗에게 알려주기 위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이 숨은 들로 나갔습니다(35절). 다윗은 이틀 동안 추운 밤을 숨어지내야만 했습니다. 숨어서 요나단의 군호를 기다리던 다윗은 마음이 초조하고 힘들었을 겁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했기에 마음이 더 아팠을 겁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군호대로 아이에게 쏜 화살을 찾으라고 말했습니다(36절). 본문 37절에서,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아멘. 요나단이 한 말은 다윗에게 도망가라는 신호였습니다.
본문 38절 중반절에서,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화살을 줍는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바위 뒤에 숨어 있었던 다윗을 향한 말이었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빨리 사울을 피해 도망가라는 신호였습니다. 이렇게 절규하며 크게 외친 요나단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서로 위험을 무릅쓰면서 지키려 했던 두 사람의 우정과 신의는 대단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가정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부부관계를 잘 맺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회 안에서 서로 믿고 내 속사정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교우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회사에서 서로 도와가며 보호해 줄 수 있는 직장동료 관계를 맺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힘들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신실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서로 죽여야 살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원수가 되어야만 살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의를 지킨 둘의 진실한 우정을 우리는 본받아야만 합니다.
화살을 주었던 아이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39절). 요나단은 자신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성읍으로 가져가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40절). 아이를 돌려보내고 난 후 요나단은 다윗과 단둘이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았을 겁니다.
아이가 성으로 돌아가자 다윗은 숨었던 곳에서 나와 요나단 왕자에게 3번 절했습니다. 다윗은 신하로서 요나단 왕자에게 예를 갖춰서 진심 어린 경의를 표현했던 겁니다. 그리고 서로 입 맞추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더욱 심하게 울었습니다(41절).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떠나면 서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원수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었기에 서글퍼서 울었습니다. 서로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를 위해 울었던 겁니다. 특히 요나단이 아버지를 배신하며 자신을 지켜줬기에 요나단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다윗은 더욱 심하게 울었던 겁니다.
본문 42절에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아멘.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죽어야 살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를 살리는 언약 관계로 발전시켰습니다. 서로 살리는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관계입니다. 죽이는 관계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살리는 관계가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살리는 빛나는 관계를 배워야 합니다. 서로 죽여야 사는 원수 관계에서 서로 살리는 빛나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했던 원수 같은 죄인 살리기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죄인이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죽이시는 사랑으로 죄인을 살리는 가장 빛난 관계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희생적인 사랑의 섬김이 빛나는 관계를 맺어줍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랑과 희생의 섬김을 통해 빛나는 관계를 맺어주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