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장 4절, 이기는 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믿음으로 승리
찬송 357장(주 믿는 사람 일어나)
(요일 5:4, 개정)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의 꼽추’를 쓴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말하길 인간에게는 3가지 종류의 싸움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자연과의 싸움입니다. 인간은 홍수, 지진, 기후, 질병, 화재 등의 자연재해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사는 것이고 지면 죽는 것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자연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인간과 인간의 싸움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싸우며 살아갑니다. 상점에서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신경을 씁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유통기한이 짧은 것을 앞 진열대에 진열해 놓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뒤쪽에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물건을 꼼꼼히 살펴본 후 물건을 삽니다. 소비자는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을까?’ 물건을 파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팽팽하게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가정의 주인이 되느냐, 종이 되느냐 하며 팽팽하게 싸웁니다. 안타깝지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은 자기를 제어하는 싸움입니다. 문제를 내겠습니다. 암 치료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살을 빼는 다이어트 성공 확률이 높을까요? 답은 암 치료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기와 싸워야 하는 다이어트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과 직결됩니다. 악한 세력은 달콤한 유혹으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기 생명도 포기하게끔 미혹합니다.
이솝우화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리와 좀나비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파리가 꿀 항아리에서 꿀을 빨아 먹었습니다. 항아리 주변에서 조금씩 꿀을 먹으면 될 텐데 좀 더 많이 먹으려고 깊이 들어갔다가 그만 꿀 항아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날개가 꿀에 묻어서 도저히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좀나비가 펄펄 날면서 파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아니 작은놈이 주변에서 조금씩 꿀을 빨아 먹어도 될 텐데 뭐 하러 그 안에까지 들어갔냐! 이 미련한 놈아!”하며 비웃었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등불을 켜자 좀나비 들이 좀 더 밝은 곳으로 더 가까이 모여들다가 불 가운데로 들어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때 파리가 하는 말이 “너는 나보다 더 바보다!”라고 말했답니다. 파리의 먹고 싶은 욕심과 불나비가 좋아하는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제어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할 때 영적인 싸움에서도 질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아멘. 오늘 본문에서 “세상을 이기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면서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해야 승리한다는 것을 함축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표면적으로 이 땅과 이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상”은 하나님과 성령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가리킵니다. 악한 세력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집요하게 넘어뜨려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세상”이라는 악한 세력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악한 세력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방법은 첫째로, 우리 육신을 공격합니다. 옥에 가두거나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둘째로, 성경 지식을 왜곡해서 공격합니다. 잘못된 이단 사상이나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셋째로, 도덕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들거나, 물질의 노예로 만듭니다.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합니다. 툭툭 건드리며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아멘. 사도 베드로는 마귀의 공격이 있기에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고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악한 세력이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강한 하나님을 공격하지 못하고, 연약한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게 공격만 받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안에서 세상의 악한 세력을 믿음으로 이긴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이기다”라는 동사를 2번씩 거듭해서 말씀했습니다. 세상의 대적이 강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막강하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긴다’라는 표현을 거듭해서 말한 것은 우리가 대적들을 이기고도 남는다는 확신찬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대적들과 어떻게 해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사도 요한은 이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요한일서에서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절 상반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났습니다. 더 이상 악한 세상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서 교통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 2:14 하반절)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멘. 흉악한 자들과 싸우는 청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살 때 그리스도인은 흉악한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보다 하나님께서 더 크시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 4:4, 개정)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아멘. “너희 안에 계신”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악한 사탄보다도 더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심히 큰 능력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최고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악한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하반절에서,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세상 악한 자들이 인간들을 넘어뜨리는 최후 수단으로 죽음을 가지고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세상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보다 더 큰 악한 세상을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너무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에게 ‘죽음’을 이기게 해주신 예수님을 전해야만 합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지만, 오직 이기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