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장(나 주의 도움 받고자)
(갈 4:1-5, 개정)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는데도 삶의 모습은 그대로 종처럼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문 1절에서,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아멘. 바울은 당시 로마 사회의 상속 제도를 예를 들어서 어린 주인이 종처럼 사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줬습니다.
어린 상속자는 법적으로는 주인이지만, 실제 삶은 종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고, 다른 이의 명령을 따라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율법에 매인 자들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사는 자가 아님을 바울은 지적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아멘. 마치 초등학생에게 10억의 주식을 주고 사고팔라고 하면 주식을 모두 쉽게 잃어버리고 맙니다. 법의 보호 아래 미성년 상속자가 후견인의 통제를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린 상속자는 교육을 담당하는 후견인과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통제를 받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구원자가 아니라, 온전한 상속을 받게 할 수 있는 임시적 보호자 역할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학교 앞에 가보면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아이들이 도로로 뛰어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울타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후견인과 청지기 역할을 합니다.
본문 3절에서,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아멘. ‘초등학문’이란 말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보여지는 신앙, 규율과 규칙에 매인 형식적 신앙을 말합니다.
예전에 제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보조 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는데도 보조 바퀴를 달고 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자전거 보조 바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보조 바퀴를 떼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 믿음을 고수한다면 성숙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아멘. ‘때가 차매’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면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으나 거듭 실패하고 나라까지도 다 잃고 말았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이라는 탁월한 학문을 가르쳤으나 사람의 죄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법과 제도가 실패하고, 동양의 윤리와 도덕이 실패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때가 찼던 것입니다.
로마가 세상을 정복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도로를 깔았습니다. 로마가 통치하던 시대는 헬라어가 공통어였습니다. 게다가 로마가 다스리던 땅은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이 자유로울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가장 좋았던 때가 도래했던 것입니다.
율법의 때가 지나가고 은혜의 복음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방법이 모든 사람이 실패한 율법 아래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셨기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율법을 따라 정결 예식도 모두 순종하고 따르셨습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17장에서,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실족할까 봐 베드로에게 바다낚시를 시켜 첫 번째 낚은 물고기에 물린 한 세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 세를 내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유대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님은 죄가 없기에, 율법을 어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정죄와 형벌과 저주를 모두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죗값을 완불하는 속량을 이루셨습니다.
본문 5절에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의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로 보낸 이유가 죄인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을 한 번만 어겨도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율법 아래서 온전히 율법을 지키심으로 죄가 없기에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속량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죗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들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속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자는 눈칫밥 먹고 재산을 상속 못 받는 부정적인 면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 시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벤허라는 영화에서도 노예를 아들로 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당시 로마 사회는 전쟁을 많이 치렀기 때문에 귀족들의 자녀들이 전쟁터에서 많이 죽고 말았습니다. 자녀를 잃으면 대가 끊어지기 때문에 귀족들은 노예 시장에 가서 노예 중에서 똘똘하고 건강한 자를 값을 주고 사서 아들로 양자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자로 삼은 노예는 로마 귀족 아버지의 신분과 지위와 존영과 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 값으로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죄 없는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임당하신 생명 값으로 율법에 노예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살리셨고,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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