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38장(예수 우리 왕이여)
(왕상 18:16-29, 개정)
(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그에게 말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엘리야가 아합 왕이 만나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신청했고,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아합의 왕궁 맡은 자 오바댜는 엘리야의 요청대로 아합 왕을 만나 엘리야가 있는 곳을 알려 줬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러 가다가(16절) 엘리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17절) 라며 3년 6개월의 가뭄 탓을 엘리야에게 돌렸습니다. 실제로는 아합과 이세벨은 우상을 세워서 숭배했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결과 극심한 가뭄이 왔음에도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괴롭게 했다며 반박했습니다.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아합을 정략 결혼시키면서 바알 우상을 섬긴 결과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음을 상기시켜 줬습니다(18절).
엘리야는 즉시 아합 왕에게 가뭄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주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아멘. 이처럼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은 이세벨과 식사할 만큼 아주 아깝게 지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위해 온 백성을 증인으로 삼고, 모두가 갈멜산에 모이도록 요청했습니다. 엘리야의 요청대로 아합은 북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과 온 백성을 갈멜산에 모았습니다(20절).
비를 내리는 풍요의 신 바알과 다산의 여신 아세라를 섬겼어도 사마리아는 가뭄에서 헤어나 올 수 없었습니다.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엘리야가 선포했기에 비를 내리게 할 사람도 엘리야였기에 아합은 엘리야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합 왕이 불러 모은 모든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엘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21절에서,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아멘. ‘머뭇머뭇하냐?’라는 히브리어는 ‘파사흐’입니다. ‘파사흐’는 ‘절뚝거리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백성이 되고도 싶었고, 자기를 위한 바알 우상도 버리기 싫은 상태라서 어떤 선택을 할지 갈팡질팡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백성을 향해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지만 백성들은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합과 이세벨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웠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마 6:24, 개정)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멘. 신앙은 양다리가 아니라, 참 되이신 하나님만 섬기라고 결단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서,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아멘. 엘리야가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오바댜가 여호와의 선지자 100명을 50명씩 나눠서 굴에 숨기고, 보호한 상태라서 갈멜산에서는 엘리야 홀로 남았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대결을 요청했던 바알 선지자 450명은 왔으나, 아세라 선지자 400명은 대결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세벨도 엘리야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섬겼던 바알은 3년 6개월간 아무 응답도 없었고,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자신이 세운 우상 숭배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일부러 아세라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야는 아주 공정한 방법으로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각각 송아지 두 마리를 잡아서 땔감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않고, 서로가 섬기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불러서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된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자 백성은 모두 옳게 여겼습니다(23-24절).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되 불을 붙이지 말라고 했습니다(25절). 그러자 바알의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그들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았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26절). 본문 26절과 29절에서 바알의 제단은 아무 소리도, 아무 응답도 없었다고 반복해서 증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상의 무능함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정오가 되자 엘리야는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묵상하고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길을 행하는지, 잠이 들어서 깨어야 할 것인지”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라고 조롱했습니다(27절). 고대 근동의 신들은 인간처럼 먹고, 자고, 여행하는 존재로 여겼기에 엘리야는 통쾌하게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 121:3, 개정)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아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지 않습니다.
엘리야의 조롱에 바알의 선지자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에 피가 흐르도록 자해하며 큰 소리로 바알을 불렀으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28-29절). 우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나는 북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물질과 건강과 성공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을 의지하라고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갈멜산의 승부는 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엘리야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절)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갈등하지 마시고, 오직 살아계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