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출애굽기 설교

출애굽기 1장 15-22절, 히브리 산파 , 십브라, 부아,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

skch712 2024. 4. 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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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38(내 주를 가까이 하게)

 

 

(1:15-22, 개정)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이 아브람이 거주했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 땅의 벧엘에서 처음으로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또한 야곱도 에서의 눈을 피해 도망갔을 때 벧엘에서 돌을 베게 삼아 잤을 때 꿈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조부 아브라함의 축복을 그대로 약속받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제단을 쌓고, 고향 땅인 가나안 땅에 돌아오면 반드시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서원했습니다(28:11-2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서원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후손들은 그 약속을 점차 잊어갔습니다. 애굽은 가뭄을 피해 잠시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머물 곳은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들은 이미 애굽 사람이 되어 갔던 겁니다. 세속과 타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일깨우시고자 했습니다.

 

오늘 본문 15-16에서 애굽왕은 히브리 산파 십브라부아를 불러 명령합니다.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본문 17에서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애굽 왕의 절대 왕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서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존재라면 2명의 히브리 산파도 파리 목숨처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십브라부아가 애굽왕의 명령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과연 절대 권력 앞에서 연약한 두 명의 여인이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본문 19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아멘. 이렇게 히브리인애굽인과 차이가 난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애굽인보다 히브리인이 더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히브리 산파가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을 낳는 현장은 신비로운 현장입니다. 그 현장을 보게 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는 현장에서 산파들은 아이 낳는 일을 도와주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의 존엄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바로 왕도 이스라엘이 강한 민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1:8-9, 개정)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아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을 잘 몰랐어도 이스라엘이 강한 민족임을 알고 있었기에 히브리 산파들을 통해 인구 억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자기 살기만 바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히브리 산파들은 절대 권력자인 바로 왕 앞에서 지혜로운 대답을 합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건강해서 산파가 가기 전에 아이를 낳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대답한 히브리 산파에게 본문 20-21 말씀에서,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아멘.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행동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야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그런데 당사자였던 이스라엘 백성들만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본문 22 말씀에서,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로 왕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감지를 하는 데 오히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이 오히려 믿는 사람들보다도 더 클 때도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께서 삼례성결교회를 통해 일하시고 세워가시는 모습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우리 믿음이 약하다면 결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 산파들도 세상 나라의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을 살리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을 살리는 자리에서 충성하고 헌신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는 곳은 생명을 낳는 전도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애굽 왕처럼 사탄은 계속해서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한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주님을 무한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살리는 자리에 서는 귀한 헌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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