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출애굽기 설교

출애굽기 2장 1-10절,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모세,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skch712 2024. 5. 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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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41(십자가를 내가지고)

 

(2:1-10, 개정)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출애굽기 1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기근을 피해 잠시 머물러야 할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주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두실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가나안 땅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들은 정체성을 잃고 애굽 사람이 되어 가고 말았습니다. 세속에 타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우길 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15-22 말씀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권을 차지하게 된 애굽 왕은 날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급증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히브리 산파, 십브라부아를 불러서 히브리 여인들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려줬습니다. 그러자 애굽왕이 산파들을 불러서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라고 물었을 때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다고 지혜로운 답변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 중에도 약속하신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번성하게 해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임산부들을 도운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집안을 흥왕하게 하시는 축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날로 번성하고 매우 강하게 되니까 애굽왕 바로는 출애굽기 1: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이렇게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애굽 왕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데 오히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이 오히려 믿는 자들보다 믿음이 더 커 보일 때도 있어 보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세워가지는 모습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다면 결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시는 약속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122에서, 애굽왕 바로가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져라는 명령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핍박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예배 교제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언약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애굽이라는 곳에 안주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우상과 음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애굽의 문화에 젖어 들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길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한민국의 하나님, 삼례성결교회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길 원하셨습니다. 잠자던 이스라엘을 깨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의 로드맵을 갖고,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택하신 백성이 죄 가운데 정신을 못 차리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 어른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찾아오게 되었던 겁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가슴이 참 아팠습니다. 축복 속에서 태어나야 할 아기들이 나일강에 던져져서 악어 밥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비통한 일입니까? 어른들이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당시 완악한 어른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킬 기색이 없었습니다. /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할 때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함께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른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만 잘되는 신앙생활은 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 오늘 본문은 400년간 이어졌던 영적인 암흑기 속에서 이스라엘의 한 레위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4절 말씀에 보면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아멘.

 

이 본문의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123절 말씀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멘.

 

히브리서를 함께 보면 오늘 본문 말씀이 잘 풀려 집니다. 믿음으로 아들 모세를 났을 때 고된 노역 속에서도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기릅니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커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발각되면 가족 모두가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갓난아기들은 백일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면역력도 생겨서 외부 사람과 접촉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아기를 살리고자 하는 계획을 짭니다. 그것은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멀리서 지켜보게 했습니다. 끝까지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아이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결단을 내립니다.

 

왜 모세의 부모는 이러한 무모한 결단을 했을까요? 역사적으로 당시 나일강은 고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풍요와 건강을 제공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일강 유역에는 여인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설치해 두고 일종의 종교의식으로써 다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나일강 유역에서 애굽 왕실을 위한 목욕장이 특별히 마련되었으리라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이 모든 사실을 익히 잘 알고 계획을 세워 신중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는 시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5말씀에서,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왔을 때에 갈대 사이의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본문 6 말씀에서, 바로의 딸이 상자를 열고 그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울음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울음이었습니다. 바로의 딸은 우는 히브리 아기가 불쌍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부모도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목숨을 걸고, 석 달 동안 숨긴 아기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기임을 알고 아기의 운명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겼던 겁니다.

 

이어서 본문 7말씀에서,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말합니다.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할까요?” / 숨죽이는 순간이었지만 멀리서 모세의 누이가 공주의 표정을 보았을 때 긍휼히 여기는 표정을 봤기에 담대하게 애굽의 공주에게 다가가서 아이를 키울 방법을 제안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 분명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부모의 지시를 따라 행동했을 겁니다. / 모세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암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에 세부적인 행동 지침을 줬을 겁니다.

 

왜냐하면 3개월 동안 고된 노역 속에서도 치밀하게 사내 아기를 키운 것을 보면 아마도 모세의 부모는 그런 치밀함 속에서 미리암에게 당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을 구사한 그 가정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차원에서 역사해주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도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없으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늘 인정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가 기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7 말씀에서, 결국 바로의 딸이 미리암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본문 8-9 말씀에서, 미리암은 히브리 유모를 자신의 어머니인 요게벳을 바로의 딸에게 소개 시켜 주고, 삯을 받으면서 자기 아들 모세에게 젖을 먹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로의 딸은 애굽의 공주로써 자신의 아버지가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왕궁에서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의 공주의 보호 속에서 모세가 젓을 떼고, 3~4 정도 되었을 때 애굽의 공주가 모세를 입양했던 겁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을 구사했기 때문에 결국 공개적으로 모세를 키울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좋지 않은 환경을 뛰어넘어 모든 환경을 지배하도록 만듭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승리합니다.

 

마지막 본문 10말씀에서,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아멘. 저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 모세의 인생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세처럼 죄의 강 가운데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강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입양시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모세처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현실에 안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새로운 애굽 왕의 핍박을 통해 애굽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니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사랑받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할 아기들이 악어 밥이 되는 저주 속에서 믿음을 발휘했던 한 가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축복의 통로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한마디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축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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