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40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요 12:46-50, 개정)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했던 유대인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믿음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인류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빛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왔다고 예수님은 증언하셨습니다. 본문 46절에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아멘. 본문 46절 말씀뿐만 아니라 요한일서 1장 5절에서도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잃었던 인간은 각기 제 길로 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세상 빛으로 오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보게 되니까 자신들의 추하고 악한 모든 죄가 드러났습니다. 빛이 세상에 비췰 때 2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빛 가운데 나오거나, 옛 습관을 쫓아 어둠 가운데 숨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반면에 빛 가운데 나가면 죄의 어둠이 다 물러가고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빛을 잃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빛 가운데 거해야 하나님과 거리낌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외아들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신 사건이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하나님의 참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크게 외쳤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빛 가운데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포기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47절에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아멘. 비록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지키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할지라도 그들을 심판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향해 제발 내가 한 말을 믿으라고 강력하게 촉구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본문 48절에서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아멘. 내 말을 받지 않는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되니까 제발 좀 내가 한 말을 듣고 돌이키라고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본문 49-50절에서,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아멘. 지금까지 한 모든 말씀은 자의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한 말씀이니까 제발 좀 영생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유대인들을 향해 사랑의 권고를 하셨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생명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려주고 보여줬을지라도 의심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못했습니다. (요 14:9,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멘. 빌립처럼 예수님이 가까이 있어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의 홍수 속에서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지만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아픈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과 하나님의 본심은 본문 47절에서,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아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셨고, 우리 눈높이에 맞춰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만을 믿고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전적으로 예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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