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85장(구주를 생각만 해도)
(눅 10:38-42, 개정)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죄가 있습니다. 바쁘게 사는 분주함입니다. 예전에 개발 도상국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에 들어가면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빨리빨리 주세요.” 빨리 밥 먹고 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 시간이 늦거나 마음이 분주할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핸드폰이나 자동차 키를 챙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 죄를 짓게 됩니다.
성경에서 분주함으로 예수님을 섬겼던 인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8절에서, 예수님께서 평소처럼 길을 가다가 마르다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마르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극진하게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반면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데 열중했습니다(39절). 이를 지켜보던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에게 도와 달라고 눈짓을 보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 언니의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단단히 화가 났던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저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40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41-42절에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분주하고 바쁠 때 염려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주하고 바쁠 때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어긋난 나의 열심은 주님의 근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르다’처럼 열심히 섬기고자 하는 모습도 좋겠지만, ‘섬김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세울 때 2가지 원칙을 가지고 세우셨습니다. (막 3:14-15, 개정)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를 세울 때 첫 번째 원칙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울 때 함께 교제하시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주님과 교제해야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서 주님과 똑같은 사랑으로 사역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원칙은 “보내사 전도도 하며”입니다. 그리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은 전도와 같은 맥락입니다. 귀신이 나가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우셔서 함께 교제하고 전도사역을 하기 위해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전도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죄를 멀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십자가 사랑으로 가득해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걱정 근심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충만한 사랑이 넘쳐서 흘러가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분주함을 멀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본문 42절에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좋은 편’은 말씀 안에 머무는 태도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우선순위로 둘 때 분주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로고스’ 진리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아멘. 우리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며 내 길에 빛이 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춰주셔서 험악한 인생길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말씀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만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분주함은 대부분 잘못된 우선순위에서 비롯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가장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삶이 예수가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분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면의 소음인 분주함을 버려야 합니다. 엘리야처럼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내면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과 큐티 생활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마리아처럼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했던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예수님게 둘 때 분주함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처럼 바쁜 가운데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쁠수록 더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을 쫓아 기도하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더 바빠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더 분주해집니다. 기도하면 하루 삶이 정리됩니다. 기도하면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기도는 분주함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르다처럼 분주해지면 예수님과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우리는 가장 우선순위에 예수님을 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더 주님과 가까워집니다. 분주함은 주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죄는 주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묵상하고, 기도하고, 주 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저를 따라서 한 마디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살이에 바빠서 분주함 속에서 주님을 멀리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옵소서. 분주함을 버리고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