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장(부름 받아 나선 이 몸)
(갈 1:11-17, 개정)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갈라디아교회를 세웠으나 바울이 떠난 후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바울의 사도 권을 부정했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율법으로 변질시키려고 하자 바울은 과거 자신의 간증을 통해 율법의 한계를 밝혔습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 전체의 간증을 증거 삼아, 자신의 사도 권과 복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왔음을 주장했습니다. 본문 11-12절에서,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멘. 바울이 전한 복음의 특징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복음을 받고 배웠다고 밝혔습니다.
본문 12절에서, ‘계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포칼뤼프시스’입니다. ‘아포칼뤼프시스’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당시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적으로 훌륭한 학자였습니다. (행 22:3, 개정)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아멘.
이처럼 바울이 율법을 수호했을 때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부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 21장 23절에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법전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수호했던 바울은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열심을 가졌던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 기세가 등등한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하여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추구해오던 율법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계시로 완전히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바울이 바뀔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계시로 율법의 오류를 깨뜨릴 수 있다고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복음에 확신이 있었던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전 1:18, 개정)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아멘.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바울에게 계시하셨기에 이 직접적인 체험이 바울을 완전히 180도 바꿨던 것입니다.
본문 13절과 14절의 서두에서 가장 먼저 ‘내가’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절과 16절에 가면 주어가 바뀝니다. ‘내가’에서 “그의 은혜로”, “그의 아들”로 바뀝니다. 신앙의 무게 중심이 나에게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바뀝니다.
전에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하게 박해하여 멸하려고 애썼고(13절),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율법에 동년배들보다도 열심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14절). 이렇게 변화되기 전 바울은 ‘내가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소명의 부르심을 받고(15절), 바울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이방에 전하기를 기뻐했습니다(16절). 변화된 바울은 더 이상 ‘내가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는 하나님 중심의 복음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아멘. 바울보다 먼저 사도가 된 예수의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을 변화시킨 주체가 사도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아라비아 광야에서 머물렀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소화하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훈련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사람의 가르침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에게 계시해 주심으로 변화되었고, 사도가 될 수 있었다고 밝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기 전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주의자였고, 그가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어두운 과거를 밝힌 이유가 있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율법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경험적인 믿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지 못하고 교회만 왔다가는 믿음은 율법적인 열심에 그치고 마는 신앙에 불과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승리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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