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0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갈 2:1-5, 개정)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14년간 열심히 복음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악영향으로 율법의 행위 믿음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이방인이었던 디도를 데리고 다시 11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1절).
바울은 이방인이었던 디도를 증거 삼아 은혜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데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사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주님이 명령하신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적으로 사도들에게 이방인들에게 전파한 복음을 제시하며 의견을 나눴습니다. 바울이 가장 염려스럽게 여겼던 것은 유대 율법을 고수했던 기존 유대 그리스도인과 새로 전도된 이방 그리스도인과의 문화적 마찰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바울이 이방인들을 전도해왔는데 기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고, 정결례를 지켜야 한다 등등 무거운 율법으로 어렵게 전도한 이방들이 다 도망갈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은혜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면 구원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디도를 증거 삼아 잘못된 율법의 행위 믿음을 깨트리고자 했습니다. 본문 3절에서,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아멘. 예루살렘교회 사도들도 헬라인이었던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 4절에서,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이었던 디도를 유심히 지켜보고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는데 예루살렘교회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에 할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노렸습니다. 문제가 수면 위에 올라 올 때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14년 동안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면서 항상 문제가 된 것이 할례 문제였습니다. 할례를 이방인도 받아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초신자 이방인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안에 이미 기득권 세력이었던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신자들을 ‘덜된 신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성찬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구원받은 신앙의 기쁨보다 정죄와 비난으로 이방인 새신자가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할례를 요구함으로 구원 관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예수만 믿으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예수 말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인가? 할례 문제 때문에 신앙의 출발점이 은혜가 아닌 율법의 멍에를 지우는 공포를 심어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 디도에게 할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양보하면, 결국 은혜의 복음이 다시 율법의 종살이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 디도의 할례 논쟁은 결국 예루살렘교회 전체의 문제가 되었고 그 결과 사도행전 15장에서 결론을 명확히 내렸습니다. 첫째,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다. 둘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받는다. 셋째, 교회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것만 이방인에게 요청한다. 이 사건이 이방인들이 교회 정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할례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은혜인가? 아니면 공로인가? / 자유인가? 아니면 종살이인가? / 은혜의 복음인가? 아니면 행위의 종교인가? 할례 문제는 영적인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초신자 이방인들이 율법의 짐을 지지 않고 은혜의 복음으로 자유 자가 되어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특별한 조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굳어진 관습이 새가족이 들어왔을 때 정착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새가족이 우리교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품어줘야만 합니다. 교회의 전통과 관습에 매여 자유의 복음을 놓치지 않도록 우리는 은혜의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바울의 관심사는 오로지 살리는 데 있었습니다. 교회의 관습이나 규율이 한 영혼을 죽인다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살리는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는 살리는 일에 바울처럼 헌신해야만 합니다. 바울처럼 사랑으로 살리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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