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장(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갈 2:6-10, 개정)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할례 문제를 풀기 위해 바울은 예루살렘에 바나바와 이방인 디도와 동행했습니다. 사도들은 이방인 디도가 할례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할례의 문제에 대해서 바울과 사도들은 똑같은 입장을 가졌던 겁니다. 본문 6절에서,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아멘. 유력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사도들이었습니다.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바울은 유명한 사도들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인정하고 알아주셨기 때문에 상관없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도들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 불필요한 율법을 더하여 준 것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온 이방인 디도에게 할례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 내용을 제시했을 때(갈 2:2) 사도들이 복음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내용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 내용이 똑같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아멘. 바울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도들은 자신들이 할례자인 유대인의 사도가 된 것처럼,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적합하다고 인정했습니다.
특히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터키 남부) 출신으로 동서 문명의 교차로 지역에서 출생했습니다. 소아시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중해를 연결하는 관문이 되는 도시가 다소 지역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다문화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국제적 환경 속에서 교육받고 당시 세계 공통어인 헬라어에 능통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어를 잘했던 겁니다. 바울은 이방인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에서 성장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의 출생지 자체가 이방인의 사도로써 이미 준비된 자였습니다.
본문 8절에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아멘.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자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도 역사하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밝혔습니다. 베드로를 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바울을 쓰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은사에 맞게 서로 섬기며 보완해 나갈 때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에서,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예루살렘교회에 기둥 같은 유력한 자 주의 형제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바울에게 주신 복음의 은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이방인 사도와 유대인의 사도로써 서로 협력해 나가자는 친교의 악수를 청했던 것입니다.
본문 7절과 8절에서, 바울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불렀다가 본문 9절에서는 ‘게바’라는 이름을 불렀던 이유가 있습니다. ‘게바’는 예수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었습니다. (요 1:42, 개정)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아멘. 베드로라는 이름은 헬라에서 통용되는 이름이었습니다. 바울이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게바’라고 불렀던 이유는 예수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사도 권을 직접 부여해주셨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사도 권을 직접 부여받은 게바가 바울에게 악수를 청한 것은 이방인의 사도와 유대인의 사도로 서로 협력하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 권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게바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아멘. 사도들은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역을 인정하면서 당부한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에 힘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도 본래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사역에 힘썼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사역은 확장할 수 있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은혜의 복음 내용은 율법의 행위를 덧붙이는 다른 복음으로 덧붙일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역은 덧붙일 수 있으나 복음은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로, 예수 복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다. 둘째로, 각자의 사명과 은사를 인정하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믿음의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야 한다. 셋째로, 은혜받은 자답게 가난한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라!
예수 복음은 사람의 권위나 사람의 인정이나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영혼을 살리는 자가 복음의 참된 증거 자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은혜의 복음 안에서 살리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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