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213장(나의 생명 드리니)
(왕상 6:1-10, 개정)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2)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3) 성전의 성소 앞 주랑의 길이는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너비는 성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4)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
(5) 또 성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6) 하층 다락의 너비는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너비는 여섯 규빗이요 셋째 층 다락의 너비는 일곱 규빗이라 성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아니하게 하였으며
(7)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8) 중층 골방의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는데 나사 모양 층계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셋째 층에 오르게 하였더라
(9) 성전의 건축을 마치니라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10) 또 온 성전으로 돌아가며 높이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1절). 출애굽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전은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끝내지 않고,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임재하시고, 함께 거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솔로몬이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시브월’은 ‘꽃의 달’이란 뜻으로서 생명이 피어나는 때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아멘. 성전의 크기는 요즘 교회들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길이가 27m 너비가 9m였습니다. 성막보다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비율적으로 2배쯤 더 크게 지었습니다. 다만 성전 높이가 3배로 더 높게 지어진 이유는 웅장함을 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의 가로, 세로, 높이의 비율은 정확하게 2배 크기로 지어졌습니다. 지성소가 정육면체 구조로 지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성전 크기가 작아도 신앙의 핵심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온전함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3절 상반절에서, “성전의 성소 앞 주랑”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말합니다. 성전 입구인 주랑은 하나님께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본문 4절에서,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 아멘. 붙박이 창문은 안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깊은 창문이었습니다.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고,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창문이었습니다. 성전의 좁은 창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빛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향해 비춰오시는 내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해야만 합니다.
본문 5절에서, 성전 벽에 다락 골방들을 연접하여 만들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배 공간인 성전과 사람이 지내는 공간인 다락이 연결되어 연접된 것은 예배와 삶이 떨어질 수 없는 함께 짝을 이루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락 골방의 역할은 ‘섬김’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성전은 예배만 드리는 곳으로 끝나지 않고, 섬김과 봉사가 이루어지는 곳임을 뜻합니다. 신앙은 예배와 더불어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예배에 한 부분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본문 6절 상반절에서, ‘하층 다락의 너비는 다섯 규빗이고, 중층 다락의 너비는 여섯 규빗이고, 셋째 층 다락의 너비는 일곱 규빗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올라갈수록 좁아지지 않고,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는 믿음이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적 시야가 넓어지고, 성도를 이해하는 마음도 넓어지고, 하나님을 헤아리는 깊이도 더 깊어지고 성숙해져야만 합니다.
본문 6절 하반절에서, “...성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아니하게 하였으며” 아멘. 골방 들보들을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던 성전은 어떤 흠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 가장 특이한 점이 본문 7절에 나옵니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아멘. 거대한 성전을 짓는데 소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리 채석장에서 ‘완벽하게 다듬어진 돌’들을 가져와서 성전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다듬은 돌’은 히브리어로 ‘에벤 쉘레마’라고 합니다. ‘쉘레마’는 ‘샬롬’과 같은 어원으로서 ‘온전함, 평화’를 뜻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날카로운 혈기나 잡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각 부분의 지체이기에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고, 기도로 다듬어지고, 평화롭게 교회를 세워나가야만 합니다.
본문 8절에서, 나사 모양의 층계는 점진적인 신앙 성장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단번에 꼭대기까지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한 계단씩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갈 때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본문 9-10절에서, “(9) 성전의 건축을 마치니라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10) 또 온 성전으로 돌아가며 높이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아멘. 성전의 외부는 돌로 지어졌지만, 성전의 내부는 최고급 자재였던 향기로운 백향목으로 내부를 마감처리 했습니다. 향기로운 백향목처럼 그리스도인은 내면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성전은 아름답게 지어졌습니다. 성전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성전을 쌓을 때 돌을 다듬는 소리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 삶에서 세상의 소음을 줄이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고난의 채석장에서 우리 인격의 모난 부분을 잘 다듬어서 예수님처럼 평화의 산 돌이 되어 거룩한 예배 공동체로 세워져야만 합니다.
(벧전 2:4-5, 개정)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아멘. 주 안에서 잘 다듬어진 산 돌이 되어 교회 공동체를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예배 공동체로 세워나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