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91장(슬픈 마음 있는 사람)
(출 14:10-20, 개정)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우리 발목을 잡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약점인 아킬레스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아킬레스건과 같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노예 생활을 할 때 애굽의 군대를 두려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막다른 골목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왕은 마음이 변했습니다. 애굽 최고 병거 600대를 모아 이스라엘 백성이 갇힌 홍해로 맹추격했습니다(출 14:7).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쫓은 바로의 군대를 발견했습니다(10절).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면 이스라엘의 아킬레스건이 애굽 군대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근성에 완전히 묶인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약점을 누군가가 건들이면 일어나는 성경의 반응이 크게 3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로, 두려워합니다. 본문 10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누군가 약점을 건드리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원수의 세력이 두려울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더 두려울까요? (마 10:28, 개정)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아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
둘째로, 원망합니다. 본문 11절에서,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애굽에 있었을 때 고된 노역과 노예 생활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출 2:23, 개정)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아멘. 이렇게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니까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삶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계속 찾아옵니다. 우리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질 때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훈련 시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간섭을 경험하면 원망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간 훈련받으면서 점점 하나님을 신뢰했고, 마지막으로 불뱀 사건 때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막다른 길로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훈련 시키려는 목적이 컸던 것입니다.
셋째로, 후회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저는 화가 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애굽에서 10번씩이나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을까? 저도 답답한데 하나님은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거지가 왕의 긍휼을 입어서 양자 되는 왕자의 신분을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왕자이면 왕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식사 예절, 무술훈련, 왕자로서 왕실 교육들이 과중하다고 그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냄새나는 거지로 살아가겠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자기가 토한 더러운 것을 다시 먹겠다는 심보가 이스라엘의 연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원수의 세력은 우리에게 가장 약한 것을 통해 공격해 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에라 모르겠다~! 되는대로 되라지 뭐~!” 이렇게 포기하고 후회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한 후회는 우리 신앙 성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원수들만 즐겁게 해주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아킬레스건과 같은 우리 약점을 통해 공격해 오는 원수의 맹렬한 공격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였던 모세의 선포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 13절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아멘.
앞서 말씀드렸듯이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대적 마귀보다도 하나님이 더 크고 두려운 분이시기 때문에 원수의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격투기 선수인 아빠와 함께시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동네 건달들이 격투기 선수의 자녀들을 위협합니다. 격투기 선수의 자녀들이 두려울까요? 아마 웃을 것입니다. 원수의 세력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약점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사 40:4, 개정)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아멘. 완전하시고 강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면 약점을 통해 공격해오는 원수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는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만히 서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는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아멘.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 힘으로 싸울 수 없는 약점들을 내려놓고 가만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순종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 15-1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을 때 출애굽기 14장 22절 말씀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아멘. 순종할 때 우리의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깨어있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본문 19-20절에서,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애굽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아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애굽과 이스라엘을 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죄의 손을 잡느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미신 구원의 손을 잡느냐?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인생을 결정짓게 만듭니다. 회색지대는 결코 없습니다.
(히 9:27, 개정)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아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산할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느 편에 설지를 묻고 계십니다. 마귀에 속삭임이 함몰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편에 서서 이기고 승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내미신 구원의 손을 붙잡고 승리하며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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