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546장(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왕상 13:20-34, 개정)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유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 후 벧엘의 늙은 선지자와 여로보암 왕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 이야기입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속이는 말에 넘어가서 결국 그 집으로 돌아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거짓말한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20절).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외쳤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겼으니, 네 시체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1-22절)
본문 21절에서, ‘어기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라’입니다. ‘마라’는 ‘쓰다’라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해 ‘반역하다, 거역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리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나이가 많고, 권위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속임수가 맞는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묻고, 속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선배 선지자의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이 더 높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벧엘에 늙은 선지자가 상수리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불쌍히 여겨서 거짓말로 떡과 물을 준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동료 선지자가 불쌍하게 보일지라도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하나님께 먼저 묻고, 움직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비극적인 예언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불편했던 식사 자리를 마치고, 늙은 선지자는 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를 보냈습니다(23절).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늙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체 곁에는 사자와 나귀가 서 있었습니다(24절). 보통 사자는 사냥감을 물어 죽이면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나귀도 공격합니다. 하지만 사자는 먹잇감을 먹지 않고, 시체 곁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 광경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면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벧엘 성읍에 사는 늙은 선지자에게 전했습니다(25절).
늙은 선지자는 그 소식을 듣자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언하신 대로 사자가 찢어 죽였다고 후회하며 말했습니다(26절). 그 늙은 선지자는 곧바로 시체를 수습하고자 나귀를 탔습니다(27절). 사람들의 말대로 시체는 길에 버려졌고, 나귀와 사자는 시체 곁에 서 있었지만, 사자는 먹잇감들을 먹지도 않았습니다(28절).
늙은 선지자가 와서 시체를 수습할 때 사자가 공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사자는 늙은 선지자가 왔을 때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이 조용히 물러갔을 겁니다. 늙은 선지자는 이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예언된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수습하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자기 묘실에 시체를 두고,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해 슬피 울며 장사를 치러줬습니다(29-30절). 늙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조상들의 묘실이 아닌 늙은 선지자의 묘실에 안치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후 늙은 선지자는 아들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본문 31절 하반절에서,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리고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한 대로 그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했습니다(32절).
놀랍게도 이 예언은 300년 뒤에 남유다의 종교개혁자 요시야 왕 때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벧엘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산당들의 뼈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왕하 23:15-16). 그때 요시야 왕이 한 묘실에 세워진 특이한 비석을 보며 성읍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그러자 그 성읍 백성들이 말하길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왕하 23:17) 그 말을 들은 요시야 왕은 유다 선지자의 뼈와 그 곁에 묻힌 늙은 선지자의 뼈를 그대로 두었고,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왕하 23:18).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성취됩니다.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어겨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여로보암은 회개하지 않고 더 악한 길로 향했습니다. 여로보암은 또다시 일반 백성을 누구나 자원하면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33절). 이 일로 여로보암의 집안과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34절).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네 집이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라고 축복을 약속했습니다(왕상 11:37-38).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99% 순종할지라도 1% 불순종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처럼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풍성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