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요 10:22-30, 개정)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수전절(Feast of Dedication)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본문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수전”은 ‘성전을 고치다’라는 의미로써 헬라어로는 ‘새롭게 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수전절은 주전 167년 헬라에서 나눠진 북방 왕국(시리아 지역)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의 헬라화를 위해 제우스 신상을 성전에 세워 성전을 더럽힌 이후 유다 마카비우스가 게릴라전으로 시리아를 몰아내고 주전 164년 성전을 재봉헌한 날을 기념하여 유대력 ‘키슬레브’로 25일부터 8일간 11월과 12월 사이에 기념하던 절기였습니다. 성전 번제단에서 부정한 돼지를 태우고 제우스 신상을 세웠으니 얼마나 유대인들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 수전절에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셨습니다(23절).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밖 성전 뜰을 사방으로 빙 둘러서 11m가 넘는 기둥과 15m가 넘는 지붕으로 이루어져 밖으로는 막혀 있었고 성전 쪽으로는 열린 공간으로 토론하고 이야기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거닐면서 예수님은 분명 과거 부정하게 제우스 신상에게 제사 지냈던 모습을 아파하면서 제자들에게 회복에 대해 가르치셨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헬라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였었으나 이제는 로마의 세력에 의해 지배당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마카비우스 시절의 독립 국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특히 수전절이 되면 더욱더 그런 마음이 절실했을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라고 소문이 났던 예수님께 묻습니다. 본문 24절에서,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이렇게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지를 밝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매우 그럴듯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이 잘못된 질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아멘. 이렇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밝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많은 이적을 베푸셨고, 그리스도라는 증거도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셨던 기적의 증거만을 요구했습니다. 계속 기적의 증거만 요구하다 보면, 증거를 또 봐도 잊어버리고, 또다시 증거를 요구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유대인들이 바랬던 회복은 눈에 보이는 회복이었기에 온전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로써 우주적인 종말의 때 일어날 일들입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제사 제도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정치 제도나 제사 제도가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한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 자신을 단번에 대속제물이 된 것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수전절만 되면 유대인들은 회복을 꿈꿨으나 진정한 회복을 누린 유대인들은 지극히 적었습니다. 본문 26절에서,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아멘.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목격했던 유대인들은 주님의 양이 아니었기에 믿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본문 27절 말씀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아멘. 진정한 회복을 원한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하신 ‘영생’이라는 참된 본질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 28절 말씀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아멘.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회복해야 할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의 회복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관계가 회복될 때 얻어지는 ‘영생’과 하나님의 다스림에 거하는 것이 참된 회복이었습니다.
요즘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처럼 일시적인 회복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온통 세상의 없어질 그림자에만 관심을 둔다면 유대인과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 회복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회복과 영생에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품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본문 29절에서 또다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삼위의 하나님이심을 밝혀주셨습니다(30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유대인처럼 정치 제도나 제사의 형식이 아닌, 본질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 속에 거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름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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