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12장(겸손히 주를 섬길 때)
(요 10:31-42, 개정)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자신을 증언하신 말씀의 결론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요 10:30). 이 말씀을 듣고, 이번에도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했습니다(31절). 하나님을 자신과 동일시 했다는 이유로 돌을 들고 예수님을 치려 했던 유대인들을 향해 본문 32절에서, 예수님은 묻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선한 일을 행하고 보여줬는데도 나를 돌로 치는 것은 이치에 안 맞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도 대답합니다. 본문 33절에서,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우리가 돌로 치려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고, 사람인 네가 어떻게 자칭 하나님이라고 신성모독의 발언을 할 수 있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시편 82편 6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아멘. 예수님께서 인용하셨던 시편 말씀은 아삽이 쓴 시로써 당시 정치적 지도자들을 향하여 “신”이라고 부른 것은 권위를 가지고 땅을 다스리고 통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정치 지도자들은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었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편 기자가 그들을 “신”으로 표현했던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유대인들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셨던 예수님은 아삽이 쓴 시편 82편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렇게 시편 기자가 인간을 향하여 “신”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반문했던 겁니다(34-36절).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기적들을 생각해보라고 도전하시면서 예수님의 기적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37-38절).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예수님은 표적을 베푸실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고, 유대인들 역시 기적의 현장에서 두 눈으로 여러 차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에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피하셔야만 했습니다(39절).
유대인들의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예수님은 그 무리를 떠나 요단강 저편으로 이동하셨습니다(40절).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이 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만났어도 어떤 이들은 믿고, 어떤 이들은 믿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적을 경험하더라도 유대 지도자들처럼 극단적으로 예수님께 반항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마음을 닫고 그 음성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새벽을 깨우며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세례요한의 말들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들이 세례요한의 말처럼 모두가 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41-42절). 당시 예수를 믿으면 유대교의 핍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신실하게 믿고 반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줘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기적을 베풀지 않고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 하기만 했던 세례요한의 말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장 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이렇게 믿음은 기적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의 복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누리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