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복음 설교

요한복음 9장 39-41절, 보는 맹인,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 자신의 죄를 못 보는 영적 소경

skch712 2024. 6. 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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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20(너 성결키 위해)

 

(9:39-41, 개정)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맹인과 다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그 자리에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9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아멘. 이렇게 예수님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하셨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맹인은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면서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맹인오로지 자신의 죄만 돌아볼 수 있었기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맹인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했기에 눈도 뜨고, 예수님이 구원자 메시아라는 사실을 영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보는 자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진리를 알아보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남의 죄는 잘 봤지만, 자신의 죄는 잘 보지 못했던 영적인 맹인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본문 40절 하반절에서, 우리도 맹인인가?” 이것을 직역하면 우리는 맹인이 아니지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육체적으로 맹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많이 배웠기 때문에 영적인 맹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자기들이 영적 맹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자랑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가 좋지 않았어도 자신들을 영적 맹인이라고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다르게 그들은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굉장히 착각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에는 중요한 영적인 배경이 밑바탕에 갈려 있습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바리새인들이 남의 죄를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으면 차라리 남의 죄를 책잡는 일을 하지 않기에 죄와 상관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판의 권한이 예수님께 있기에 남을 판단하는 그 자체가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넓은 의미로 해석해보면 복음을 듣지 못한 영적인 맹인도 죄에 대한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로마서 214-15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양심을 주셨기에 어느 정도 사리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서는 양심에 의해 심판받습니다.

 

본문 41에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로마서 118-21 말씀을 봐야 합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아멘.

 

사도 바울로마서 118-21에서,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계시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맛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캐나다 접경지대에 있는 나이아가라폭포를 보면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손길을 곳곳마다 드러내셨습니다.

 

인간들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을 아무리 손으로 가린들 태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피조 세계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섬세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분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내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종교가 파생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계시하신 메시아에 대한 증거 자료들을 많이 봐왔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스스로 진리를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서 구세주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은 예수님보다도 더 나은 의로운 길에 서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실 때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선포하셨을 때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들 외에도, 그들은 이미 구약성경을 꾸준히 연구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증거를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죄로 부패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 남들이 지은 죄는 잘 보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에는 매우 냉철했지만, 정작 자신의 죄 된 모습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맹인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의 심령은 영적 맹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b) 자기 자신의 죄를 바라보지 않고 썩게 놔두는 것이 가장 큰 질병입니다. 내가 죄인 임을 알 때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죄로 병든 내 모습을 보며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영적인 안목이 열려서 주님을 바르게 따르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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