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장(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마 23:5-7, 개정)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죄가 있습니다. 인정과 주목받고 싶은 집착의 죄입니다. 허영심에 사로잡혀 자기를 과대 포장하여 자기 내면 안에 있는 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죄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정받길 원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다 보면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외식 적인 신앙에 빠지고 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했지만, 실상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외식 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마 23장).
오늘 본문 5절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아멘. 유대인들은 항상 경문(출 13:1-10, 11-16, 신 6:4–9, 11:13–21)을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경문 안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히-쉐마 이스라엘)”로 시작되는 성경 구절을 적은 가죽 종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3번 기도할 때 경문을 반드시 이마에 붙이고 팔에 감았습니다. ‘경문 띠를 넓게’ 만들었다는 것은 지나가던 사람들 눈에 잘 보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경건 생활을 자랑해 보이고 싶었던 겁니다. 이것이 인정과 주목에 대한 집착입니다.
본문 5절에서, ‘옷술’은 (민 15:38, 개정)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아멘.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으로 옷단 귀와 술을 연결해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귀’는 히브리어로 ‘카나프’로써 의복의 끝단을 가리킵니다. (신 22:12, 개정)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이렇게 의복 끝에 네 ‘귀’에 ‘술’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해설책인 ‘미쉬나’에 의하면 ‘술’의 마디와 꼰 실을 감는 숫자에 의미를 담아서 여호와, 십계명, 모세오경, 구약성경을 상징하는 ‘술’의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율법의 해설책인 ‘미쉬나’에서 ‘술’의 제조법을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술’의 매듭은 다섯이고, 매듭 사이에는 네 개의 칸이 생겨야 했습니다. 매듭을 다섯으로 고정한 것은 모세오경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칸이 4개인 것은 ‘여호와’를 가리키는 히브리 자음인 네 철자를 가리켰습니다. 두 번씩 감아서 만든 매듭이 다섯이기에 도합 10의 숫자가 됩니다. 그것은 두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개의 칸은 순서대로 꼰실을 7번, 8번, 11번, 13번 도합 39가 되어서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째 매듭 맨 밑에 달린 꼰실 수도 반드시 8개여야 합니다. 8개의 술과 5개의 마디를 합하면 13이 되는데, 술의 히브리 숫자의 가치가 600이기에 13과 600을 합하면 613이 되어서 모세오경에 들어 있는 613가지 명령을 상징합니다.
유대인들은 세세하고 정교하게 만든 ‘술’을 달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긍심을 가졌습니다. 옷에 달린 ‘술’은 이방인과 구분시키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방법 중에 한가지였습니다.
민수기 15장 39절 말씀에서,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아멘. ‘술’을 옷에 달아서 항상 ‘술’을 보면서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을 막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거민 들을 심판하셨던 이유가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옷에 달아서 항상 ‘술’을 보면서 이방인들과 ‘다름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술’에 달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민 15:40-41).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경쟁적으로 ‘술’을 길게 만들어서 달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경문 띠를 넓게 만들고, 옷 술을 길게 만든 보여주기식 종교 생활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습니다(5절).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어떤 행사가 있을 때 가장 높은 자리를 앉고자 애를 썼습니다(6절).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7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복음 알맹이가 없는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강력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23:33, 개정)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아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주목받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복음 알멩이가 빠집니다. 허영심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점점 과대 포장하고 맙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내면 안에 있는 어두운 죄를 밝히 보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 길로 가고 맙니다.
그렇다면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집착에서 벗어날 방법을 성경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 1:10, 개정)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아멘.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삶보다 하나님께 좋게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 23:11-12, 개정)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아멘. 예수님은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자신을 낮추시며 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존귀와 칭찬받는 자리보다 비난과 손 가락질 당하는 가장 낮은 십자가 자리에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빌 2:5-8).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 은밀한 경건을 실천해야 합니다. (마 6:1, 개정)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아멘. 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서 대표 기도할 때 화려하게 말하거나 너무 길게 기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도를 진실하고 은밀하게 골방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구제할 때도 사람들이 보지 않게 구제해야 합니다. 이런 은밀한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결국 교만과 외식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저를 따라서 한 마디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과 주목받고 싶었던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저에 생각과 마음을 회개합니다. 이 시간 이후로는 하나님께 잘 보이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