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장(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마 7:1-2, 개정)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죄가 있습니다. 비판과 판단의 죄입니다. 비판과 판단의 죄는 교만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 5:5).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적으로 만드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2절에서,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비난과 판단은 우리 내면의 교만한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비판과 판단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의 특성이 참소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계 12:10).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을 비판했던 갈렙의 자손 나발입니다(삼상 25:2-38). 다윗이 나발의 양 떼를 지켜줬던 일이 있었습니다. 후에 다윗이 부하 10명을 보내 나발에게 식량을 좀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은 무례하게 ‘다윗이 누구냐?’고 업신여기며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부하 10명에게도 ‘주인을 떠난 종’이라고 비판하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지혜롭게 사과하고 화해서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왕의 잔치처럼 즐기며 크게 취해 있었습니다. 결국 나발은 열흘 후에 하나님께서 치시므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업신여기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미리암과 아론이 이방 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를 판단하며 비방을 했습니다(민 12장). 이때 아론보다도 미리암이 구스 여인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반대하며 크게 비판했기에 미리암에게만 나병이 걸렸습니다. 아론은 즉시 ‘우리의 어리석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회개했습니다(민 12:11).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판했던 이유는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한 시기심과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민 12:2, 개정)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아멘. 이런 가운데도 모세는 나병에 걸린 미리암을 위해 중보기도 했고 7일 만에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미리암은 성경에 나오지 않고 죽었을 때만 잠깐 나옵니다(민 20:1).
사실 모세도 잘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대치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민수기 12장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미리암의 이야기에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비판과 판단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받고 회복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속에 내재 된 마음의 독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교만이 비판과 판단으로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자기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하나님께 심판받습니다.
(벧전 5:5, 개정)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아멘.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할 때 최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자리는 재판장이 앉는 곳이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최후 심판대에서 우리 자리는 피고석입니다. 비난하며 비판하고, 판단하는 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넘보는 것이기 때문에 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자신의 죄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다음 구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마 7:3, 개정)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아멘. 예수님은 남의 티보다도 네 눈 속에 말뚝과 같은 들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내 눈 속에 박힌 큰 들보가 상대방의 눈에 반사되어 티로 보인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돌아볼 때 비판과 판단을 멈추게 됩니다.
둘째로, 심판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롬 12:19, 개정)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신 32:35)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자리에서 비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심판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누구를 비판하고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심판하는 일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덮어주는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에 대해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죄인들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 때문에 모든 죄가 덮어지는 큰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오래 참고, 견디며 용서와 사랑으로 비판과 판단보다 부족함을 덮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 53:5, 개정)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으로부터 시작되는 마음의 독인 비판과 판단을 멀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마귀의 성품인 교만과 비판과 판단을 지구 밖으로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덮어주고, 용서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비판과 판단의 화살을 대신 십자가에서 맞아주신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는 복된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저를 따라서 한 마디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비판하며 판단했던 죄인입니다. 이 시간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던 비판과 판단을 멀리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서로 사랑하고 덮어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