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장(예수 따라가며)
(삼상 15:1-9, 개정)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물론 돈이나 명예보다도 사람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이 먼저여야 합니다.’ 사람이 먼저가 되면 인본주의가 되고, 하나님이 먼저이면 신본주의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은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보다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통치를 거부하면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는 신본주의가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3절). 그 이유가 본문 2절에서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아멘. 이 일은 대략 400-50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명기 25장 17-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멘. 이렇게 아말렉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가장 뒤처지고 약한 자들을 후미에서 칠 정도로 흉악하게 살인을 저질렀던 악한 민족이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징적인 나라였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을 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500년 동안 참으셨다가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성경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남녀노소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세상 법정에서도 흉악한 살인자에게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으로 판결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흉악하게 살인을 저지른 아말렉 민족이 회개하기를 400-500년 동안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오늘 말씀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물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죄에서 돌이켜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불순종했던 사울에게도 암시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앞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무엘이 해야 할 제사를 드리는 사역을 자신해 버리는 불순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불순종에 쓴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고 진멸하라는 개인적인 메시지도 암시해준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멀리하시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길 바랍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군사를 모집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 하반절에서,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명이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군인 숫자를 구분한 것은 내부적으로 분열의 징조를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던 사울 왕은 내부적인 분열을 품고 전쟁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에서,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아멘. 아말렉 지역에서 살았던 ‘겐 사람들’은 미디안 사람들의 후손으로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호밥)의 자손이었습니다(삿 1:16). 400-500년 전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선대 했던 자손이었습니다(민 10:29). 사울은 이스라엘을 선대 했던 ‘겐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선대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 날에 구원받습니다. (나훔 1:7, 현대인) “여호와는 선하시고 환난 때에 피난처가 되시며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하신다.” 아멘.
본문 7-9절 말씀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말렉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부분적인 순종을 했습니다. 아말렉 모든 백성을 진멸했으나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양과 소를 남기고, 하찮은 것은 진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전쟁 관습은 전쟁에서 패배한 왕이나 지도자를 생포했습니다. 왕을 생포한 이유는 전쟁의 승리를 과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패한 왕을 살려 두고 협상이나 인질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왕이 패배한 왕을 살려주는 것은 자신의 위대함과 자비를 과시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던 겁니다. 이번에 사울이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습니다. 도저히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함께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9절에서, 좋은 양과 소는 남겨두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했던 이유가 백성들의 압력과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15:24). 백성들 입장에서는 좋은 양과 소를 죽이기가 아까웠을 겁니다. 사울도 백성과 똑같은 마음이었고, 백성에게 인정받으려고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 없는 것은 진멸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타협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결국 영적인 전쟁은 사람이 먼저인가? 하나님이 먼저인가?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면 탈이 없지만, 사람 편에 서면 탈이 생깁니다.
부족한 목회자로서 하나님 편보다 사람 편에 설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연약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님들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 종과 함께 순종해야만 합니다. 우리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우리교회의 참된 주인이 되실 수 있도록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