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장(내 주는 강한 성이요)
(삼상 22:6-10, 개정)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자기 고향이었던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6절).
사울은 다윗이 400명의 무리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졌습니다. 도망간 다윗은 사울의 대적자가 되고 말았던 겁니다. 모압 땅에서 다윗은 유다 땅 ‘헤렛 수풀’(삼상 22:5)로 몸을 숨겼습니다. 사울의 걱정은 혹시라도 유다 지파였던 다윗이 유다 지파와 연합하여 왕을 대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손에 단창을 들고 자기의 정치적인 고향이었던 기브아에서 베냐민 사람을 선동하여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겁니다.
본문 7절 상반절에서, 사울 곁에 선 신하들에게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삼상 9:1).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한 지파 출신이 왕이 되면 같은 지파 사람들이 핵심적인 최측근 신하로 등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져야 믿을만하고 충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대부분 신하는 친인척이 많았던 겁니다.
사울 주변의 신하들은 대부분 베냐민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에게 말하는 것은 곧 베냐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울의 정치적인 고향인 베냐민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했던 겁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베냐민 사람들을 향해 선동하는 말을 합니다. 본문 7절 하반절에서,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아멘. 사울의 말은 다윗이 왕이 되면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높은 지위를 주지 않고 기득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선동했습니다. 우리가 베냐민 사람인데 유다 지파 다윗에게 왕권을 넘겨주어 우리 주인으로 삼는 짓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약한 베냐민 지파가 어렵게 얻은 강력한 왕권을 이새의 아들에게 줄 수 없다고 강력하게 선동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베냐민 지파의 한 가족으로써 내 아들 요나단이 이새의 아들 다윗과 굳게 맹세하여 약속했는데도 나에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서운함을 내비쳤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다윗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도 모두 다윗 편이 되었기에 솔직하게 왕에게 고발하는 자가 없다고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신하들을 선동하여 다윗 편에 서서 오늘이라도 매복했다가 왕을 치려는 속셈이 아니냐며 신하들을 강하게 몰아세웠습니다. 본문 8절에서, 사울은 믿고 있던 신하들에게 배신당한 것에 대해 고립감과 분노와 원망을 강력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때 사울의 신하였던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말을 듣고 고발했습니다. 본문 9절 하반절과 10절에서,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아멘. 지금까지 도엑은 다윗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자신의 속상함을 밝히고 가장 사울이 원할 때 고발하여 자신이 출세를 바랐던 겁니다. 사울이 가장 원할 때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줬다는 고발을 했기에 도엑은 출세의 길이 열렸던 겁니다. 나중에 다윗은 도엑이 사울에게 고발한 것과 제사장 가문을 죽인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며 시편 52편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자신의 왕권과 안위를 추구하다 보니 간신이었던 에돔 사람 도엑이 반응했던 겁니다. 사울의 신하였던 에돔 사람 도엑은 이방인이었기에 더 이상 출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도엑은 사울처럼 자신의 안위만 바라봤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조했던 겁니다. 사람을 죽여서 출세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도엑은 에돔 사람이었기에 에서의 자손이었습니다. 에서도 눈앞에 보이는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창 25:29-34).
(요일 2:16, 개정)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아멘. 죄는 항상 세상으로부터 나오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부터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높은 명예와 물질만 추구하다 보면 주님과 멀어집니다. 주님과 멀어지면 점점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것에 동조하기 마련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졌고 신하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했던 사울은 점점 다윗을 죽이는 일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살리는 데 있습니다. 죽이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유혹은 나는 살고 남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죽고 남을 살리는 죄인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하루 남을 죽이는 언행을 삼가고, 생명을 살리는 언행으로 영혼을 살리는 복된 한날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