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장(예수 우리 왕이여)
(갈 2:17-21, 개정)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안디옥에 방문했던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던 중 할례 자들이 들어오자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베드로를 책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의 본질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과 유대주의자들은 예수 믿는 것은 좋지만 할례와 율법도 지켜야 진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아멘. 예수 믿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죄인이 된단 말인가? 율법과 상충하는 예수님은 죄를 짓게 만드는 분이신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거짓 교사들과 유대주의자들에게 반문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아멘. 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헐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이 고수했던 율법적 신념이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 갔다는 사실에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율법을 고수하라고 강요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범법자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붙잡는 것은 십자가 은혜를 부정하는 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를 사할 수 없는 율법을 지키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방법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아멘. 율법의 기능은 구원에 있지 않고,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롬 3:20, 개정)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멘.
율법을 통해 내가 죄인이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죄 사함을 주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필요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율법의 내용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바울은 또 말합니다. (롬 3:10, 개정)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아멘. 제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한번 지은 죄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롬 3:23, 개정)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아멘.
죄가 무서운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영원히 단절시키는 무시무시한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롬 6:23, 개정)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멘. 죄의 끝은 사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죄 사함과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이 구절은 바울이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율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자아가 강하고 내가 살아있는 자들은 말이 많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만 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사시면 예수님의 명령에 언제든지 “예 알겠습니다”라고 순종합니다. 나의 옛 자아, 나의 공로, 나의 자랑, 나의 의는 모두 죽고 예수님만 내 안에 사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삶이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길입니다(19b절).
예전에 바울은 율법에 매인 삶을 살았습니다. 율법에 매인 삶은 기쁨과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뛰어넘는 기쁨과 감격 속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신앙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본문 21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멘. 만약 율법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헛되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사해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죄의 값은 생명 값만 필요하기에(레 17:11)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던 것입니다. 오직 은혜의 십자가 복음 이외에 율법이나 행위 믿음은 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내 노력으로 천국 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공로를 의지하여 십자가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존재들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 나는 없고 예수님만 있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주도권을 맡기면 예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에게 구원도 주시고, 영원한 생명도 주시고, 만복도 내려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에 진정한 왕으로 모시면서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참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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