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갈 3:11-14, 개정)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은혜의 복음으로 세워졌던 갈라디아교회가 거짓 교사들에 의해 율법에 미혹되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27장 26절 말씀에서,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아멘. 바울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여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은혜의 복음으로 시작했던 믿음이 율법의 행위로 되돌아가면서 저주 아래 거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갈 3:10).
운전면허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이 있습니다. 만약 기준 점수에 1점만 모자라도 합격하지 못합니다. 저도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1점 차로 아깝게 떨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율법은 100점짜리 순종을 요구합니다. 만약 율법을 지키다가 한 번만이라도 불순종하면 불합격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람의 노력과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저주의 굴레 아래 속한 것임을 알렸습니다.
본문 11절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아멘. 율법을 아무리 잘 지키려고 노력해도 실수로 한번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의롭게 되는 일이 허사가 됩니다. 이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끝없는 정죄와 심판과 저주 아래 머물며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아멘. 율법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행하면 살고, 지키지 못하거나 행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완벽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을 대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합 2:4, 개정)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율법을 지키는 행위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에 구약성경에서 이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에 대해서 본문 13절을 통해 구체적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대신 받으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속량’이라는 단어입니다. ‘속량’은 ‘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노예나 종에게 몸값을 완전하게 치러서 종이 아닌 자유인이 되었다는 단어가 ‘속량’이라는 단어입니다. 죄는 내가 짓고, 저주의 죄 갚은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심으로 죄인을 속량해주신 것입니다.
(신 21:23, 개정)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아멘.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이 저주의 나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난 후부터 신명기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은 죄 때문에 저주의 나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는 못난 나 때문에 저주의 십자가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바울은 깊이 깨닫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종합해보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저주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시고 생명 값을 치러 구원하셨고, 의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의 율법 아래 있게 하지 않고, 은혜의 복음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 14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속량의 은혜는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먼저 주신 믿음의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도 미치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의 성령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의 새 계명을 지킬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의 저주에서 예수님의 생명 값으로 우리를 속량해주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고의 선물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굳게 믿고,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의무감으로 믿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서 사랑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켜나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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