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장(성령이여 강림하사)
(갈 3:1-5, 개정)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유대 배경을 가진 거짓 교사들이 미혹하여 은혜의 복음에서 율법적인 복음으로 변질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영적으로 다시 깨어나길 바라면서 강력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전했고, 갈라디아 성도들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던 겁니다.
본문 2절에서,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아멘. 바울은 처음 예수 믿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던 그 경험을 기억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할례와 율법을 몰랐을 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즉 구원의 출발점이 행위가 아닌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줬습니다.
본문 3절에서,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아멘. 갈라디아교회가 성령의 은혜로 시작했지만,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육체의 노력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바울은 반박했습니다.
신앙은 자율주행차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성령의 자율주행차를 탔다가 도로 내려서 자기 힘으로 걸어가려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며 맡기는 것입니다. 성령의 자율주행차를 타고,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요 15:26, 개정)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아멘. 첫째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의 사역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십니다. 둘째로, 성령은 보혜사로서 연약한 성도를 힘써 도우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롬 8:26, 개정)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아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마귀는 티 안 나게 교묘하게 미혹하고 공격해서 우리 신앙을 무너뜨립니다. 마귀는 우리보다 똑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신뢰해야만 합니다. (요 16:13, 개정)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아멘.
갈라디아 성도들은 은혜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적 행위 때문에 복음을 쉽게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바울은 책망했습니다(4절). 마치 마라톤 선수가 42킬로미터를 거의 완주했는데 결승선 앞에서 누군가 말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무효입니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세요.” 이처럼 갈라디아 성도들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져 율법적 방법으로 구원받으려는 시도가 구원을 무효화 하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으로 달려온 신앙의 여정을 스스로 무효화 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바울은 지적했던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또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냐?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냐? 이렇게 강력하게 따져 물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신 성령의 역사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나타난 사랑과 섬김의 큰 변화들과 성령의 열매들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나요? 율법적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주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의 은혜로 시작하여, 성령의 은혜로 유지되고, 성령의 은혜로 성숙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내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시작한 우리의 신앙 여정이 은혜의 십자가로 마쳐져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을 의지했던 신앙이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신앙으로 성장해 나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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