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장(나의 갈 길 다 가도록)
(갈 3:6-10, 개정)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거짓 교사의 미혹에 상당수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의롭게 되는 이유가 믿음 때문인지, 율법 때문인지를 아브라함을 통해 변증했습니다.
본문 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멘. 아브라함은 모세가 쓴 율법보다도 최소 430년 이상이나 앞선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최초로 할례를 행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인물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시점이 할례받기 이전이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훨씬 전이었습니다. 위대한 종교적 업적들을 남기기 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의로워지는 것이 경건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보다 믿음이 더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드러내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삶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도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은 틀린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본문 7절에서,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아멘. 이처럼 바울은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혈통 때문에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기준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주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막 16:15, 개정)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아멘.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는 같은 혈통이 아니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 제도에서도 입양된 아이는 부모의 피를 이어받지 못했어도 부모의 성을 받고, 유산도 받고, 사랑도 받고, 자녀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립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 8절에서,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아멘. 복음의 기쁜 소식이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음이 먼저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죄인들을 향해 약속하신 최초의 원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그리고 또다시 복음에 대해 말씀하신 구약성경 구절이 창세기 12장 2-3절 말씀입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멘.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복음을 전하셨고, 이방인도 아브라함이 전한 축복의 복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축복의 복음은 혈통의 우위성을 가진 유대인들 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복음 이외에도 율법을 더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멘. 믿음은 완전히 맡기는 신뢰입니다. 믿음은 우리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님만 의지하는 삶이 믿음입니다.
가족 여행 중에 어떤 어린아이가 높은 흔들 다리 앞에서 무서워하며 건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손을 붙잡자 아이는 담대하게 흔들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다리가 높고 흔들거려도 아버지 손만 잡으면 아이는 담대해집니다. 이처럼 믿음은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바울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은 ‘완벽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실패요, 한 번 넘어지면 전부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사다리가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를 기대는 순간 자유를 잃고, 두려움에 묶이고 맙니다. 율법에 매인 자는 진정한 자유의 복음을 누리지 못하기에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죄에서 자유를 주신 주님과 함께 행복하고,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이기에 몰래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구원자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는 주님과의 행복한 동행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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