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438장(내 영혼이 은총 입어)
(왕상 1:1-10, 개정)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존경받았던 다윗도 세월의 무게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아멘. 다윗은 젊었을 때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을 잡았고, 심지어 블레셋의 큰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맹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늙게 된 다윗은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통치할 힘도 많이 빠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의 나이가 많아 늙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나 헤브론에서 30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를 했기 때문에 다윗의 나이는 70세 정도였습니다. 오늘날은 의학이 많이 발달 되어서 70세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윗 시대 70세는 나이가 많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이불을 덮어도 체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질병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저체온증, 혈액순환 장애, 갑상선 기능 저하증, 신경계 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병 등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체온이 오르지 않았고, 잠자리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윗 왕의 신하들은 늙은 다윗 왕을 위해서 젊은 처녀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해 왕을 받들어 시중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수넴 여자 아비삭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2-4절). 그만큼 다윗은 몸도 쇠하였고, 나라를 통치할 힘도 없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다윗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틈을 타서 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윗의 넷째 아들이었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였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죽었고, 둘째 아들은 일찍 죽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다가 요압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될 수 있는 서열 1순위였습니다.
본문 5절에서,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아멘.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자기를 스스로 높여 내가 왕이 되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전에 셋째 형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취했던 작전과 매우 흡사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해서 동행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아도니야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도니야는 셋째 형 압살롬처럼 용모가 심히 준수했고, 의젓했기 때문에 다윗은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6절). 하지만, 아도니야는 큰 착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서열이나 외모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야만 왕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1804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때의 일입니다. 대관식 때 교황이 황제의 머리에 관을 씌워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교황의 손에서 황제의 관을 낚아채서 스스로 자기 머리에 썼습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관은 내가 쟁취한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왕이 된 나폴레옹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내가 왕이 되고자 왕관을 쟁취하려다가 결국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기 한계라는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죽은 형 압살롬 못지않게 굉장히 치밀했습니다. 본문 7절에서,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아멘. 그 당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권력자들을 이미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군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포섭했습니다. 막강한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자가 군사령관 요압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다윗을 도운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켰을 때 살아남은 자가 아비아달 제사장밖에 없었습니다(삼상 22장). 그리고 압살롬의 반란 때도 예루살렘에 남아 다윗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도니야는 군사력과 종교적 정통성을 모두 포섭하고 확보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아도니야에 편에 서지 않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제사장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아도니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사독은 압살롬의 반란 때 아비아달 제사장과 함께 다윗의 눈과 귀가 되어줬던 자였습니다(삼하 17:15-21).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다윗 왕의 시위대 대장으로서 사자를 잡고, 애굽의 거인을 죽인 용사였습니다(삼하 23:20-23). 선지자 나단은 ‘다윗 언약’을 전달했던 자였습니다(삼하 7장).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질렀을 때 책망했던 자이기도 합니다(삼하 12장).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했던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아닙니다. 솔로몬의 관리였던 엘라의 아들 시므이 이거나(왕상 4:18), 다윗의 형 시므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레이’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당시 다윗 왕 곁을 지킨 신실한 신하 중 하나였을 겁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이 아둘람 굴 시절부터 고난을 함께 겪으며 세워진 정예의 무관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 걸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떠 온 용사들을 포함해서 37명의 이름이 사무엘하 23장 8-3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반대자들을 초청하지 않고(10절),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에느로겔 근처 ‘소헬렛 바위’(미끄러지는 자의 바위, 뱀의 바위의 뜻 - 좁은 절벽 통로가 있어서 외부 출입자 감시가 좋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대규모로 모의하기 좋은 적합한 전략적 요충지)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솔로몬을 제외한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여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9절). 겉은 화려한 즉위식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영적 반역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 왕이 병약해져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왕이 될 때 화려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상태는 모래성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고, 중심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 된 교만을 버리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님이 책임져주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