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12장 9-16절,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침, 양보다 귀한 한 영혼, 살리는 삶, 이타적인 삶

skch712 2024. 1. 2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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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36(환난과 핍박 중에도)

 

(12:9-16, 개정)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9에서,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회당을 찾는 것처럼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책잡고자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본문 10에서, 마침 한쪽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란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왜냐면, 마태복음 127 말씀에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6:6, 개정)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에 대한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술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 입맛대로 안식일을 지켰던 바리새인들의 모순적 신앙을 지적하셨습니다. 본문 11-12에서,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아멘.

 

안식일에도 구덩이에 빠진 양을 살리면서 양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안식일에 했다고 율법에 접촉되지 않는다는 것을 변론하셨습니다. 안식일에 구덩이 빠진 양을 살렸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 자신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고 푼다면, 굉장한 오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살리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살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제가 대학 때 새벽예배 마치고 기도할 때 종종 이 찬양을 올려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가지려 했던 세상일들 이젠 모두다 해로 여기고 주님을 위해 다 버리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주님을 앎이라 모든 것 되시며 의와 기쁨 되신 주 사랑합니다. 나의 주아멘.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살지 않고 오로지 우리를 살리는데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의 만족과 유익이 아닌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고, 구원하고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율법의 오류에 빠져있었습니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면서 왜 양보다 소중한 사람을 살리지 않느냐?고 반문했을 때 유대인들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13에서,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다른 손과 똑같이 건강하게 회복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것으로 간주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단지 손을 내밀라고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와 같은 예수님의 발언에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 손을 내밀라고만 말씀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는커녕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위선적인 치부만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그들 눈앞에서 병자의 손이 치유되는 살아나는 증거가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4).

 

이렇게 율법의 형식에 매이면 사람을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바리새인처럼 신앙생활을 자신의 형식적인 신앙의 틀 안에서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시기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살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의 능력이 왔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혼을 살리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합니다.

 

본문 15-16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다 고치시고, 소문을 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땅에 많은 연애인들이나 의사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합니다. 유명해지면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과 다른 행보를 걸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항상 겸손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정치적인 메시아로 추앙받게 되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대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데 그 일이 중단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자들의 특징은 나보다 남을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삽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타적으로 남을 살리는 자가 예수 제자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성숙도 기준은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 이익을 위해 해석하고 따르면 안 됩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셨던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본받고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더 빨리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처럼 영혼을 살리기 위해 손해 보고 오해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리는 사역에 동참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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