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14장 22-33절, 산 기도, 바다 위로 걸어오심,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원, 하나님의 아들

skch712 2024. 2. 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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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06(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14:22-33, 개정)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예수님은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따르던 무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예수님을 추대하고 싶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아로 예수님을 추대하고 싶은 제자들과 무리의 요동치는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취하신 행동은 본문 22에서,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아멘. 이렇게 예수님은 어떤 정치적 인기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하늘 보좌도 포기하고 오셨는데, 세상 인기와 자리 욕심을 낼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 위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기도의 자리에 계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사역의 동력을 얻으셨고, 그 힘으로 복음 전도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기도와 전도였습니다. (3:14-15, 개정)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아멘.

 

그래서 주님은 본문 23에서,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아멘.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에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높아지려는 교만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히 낮아지는 순종의 자리였던 기도의 자리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며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기도에서 2번씩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26:39, 42).

 

주님의 기도는 자기 유익보다 영혼을 살리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전도방법은 기도의 전도방법직접 만나 전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함께 거했고, 영혼을 살리고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거함과 세상을 향해 나눔의 삶을 통해 진정한 예배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세상과 다른 좁은 길로 가파른 길로 걸어가시면서 자신의 유익보다 영혼을 살리기 위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보내고 예수님은 산에서 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거하며 깊게 교제했습니다(23). 그런데 기도 중에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을 아시고는 밤 사경새벽 3시쯤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을 향해 가셨습니다(25). 제자들은 육지에서 6km쯤 떨어진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불어온 풍랑과 힘겹게 싸우면서 고초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창조 질서를 깨뜨리면서까지 바다를 걸어가신 기적적인 사건은 항상 누군가를 살리고자 할 때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죽으면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예수님 대신 감당해야 했기에 제자들을 풍랑에서 구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었던 겁니다.

 

풍랑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바다를 걸어오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유령인 줄 알고 소리치며 두려워했습니다(26). 그러자 주님은 본문 27에서,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두려움과 절망 속에 찾아오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복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젠 살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오라고 명령하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걷게 됩니다(28~29). 그러나 베드로는 몇 발짝 걷다가 물에 빠지게 됩니다. 물에 빠진 이유를 본문 30에서,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여러분! 이 말씀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베드로는 분명 주님의 음성을 향해 물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모든 오감이 작동하여 살고자 몸부림치게 됩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이유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오감과 힘으로 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30에서, “바람을 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람이 보입니까? 안보입니다. 새벽 3였기에 어두웠고, 바람은 느낄 수 있지 보이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았다는 것은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자기 의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풍파와 영원한 죽음의 질병은 무섭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베드로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구사하며 예수님을 향해 바다를 걸었던 베드로도 죽음 앞에 서게 되니까 죽음의 바다에 빠져들고 맙니다. 죽음 앞에 서면 우리의 신앙은 금방 들통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을 꾸짖으신 것은 예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망이었습니다(31). 참 구원과 믿음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 구원과 믿음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100% 맡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품으로 과감하게 내 던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불완전한 믿음조차도 우리 주님은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건져 주시고, 배에 올라타심으로 죽음의 위기 상황은 모두 종료되고 말았습니다(32). 그제 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33).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고자 하는 것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처럼 불완전한 믿음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찾아와 구원해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온전히 주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봐도 바람처럼 어떤 좋지 않은 환경이 찾아오면 우리도 모르게 두려워하며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 베드로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나를 건져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을 구원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고 진정한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위기의 순간 도와주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손길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한날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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