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6장 17-25절, 유월절 준비,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 양 잡는 날, 가룟 유다의 배신, 고난주간

skch712 2024. 4. 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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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78(여러 해 동안 주 떠나)

 

 

(26:17-25, 개정)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본문 17에서, “무교절의 첫날마가복음 1412에서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고 말씀했고, 누가복음 227에서는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날과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 같은 날인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였던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17). 오늘 본문 18 말씀보다도 누가복음 228-13 말씀이 유월절 준비를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22:8)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헬라어:‘안트로포스’-인간, 성인 남자)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있냐고 물으면 큰 다락방을 보여줄 것이고 거기서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성안에서 집주인을 만나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동이는 여인들이 하는 일이었으나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이 남자였다는 것이 특이했기에 순조롭게 유월절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20부터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예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 당시 애굽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문화에 400년 넘게 젖어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죄 용서의 피 값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흠 없는 어린양을 잡은 피로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르라고 했던 것입니다(12:7). 어린양의 피가 묻는 곳은 그 생명의 피 값으로 인해서 장자의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양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월절 만찬은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했습니다(22:19). 유월절 식사 교제가 성만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통해서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1:12, 개정)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마음속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만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확실한 증거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귀한 은혜의 자리를 앞두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계획을 했습니다(26:14-16).

 

본문 21에서,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마지막 만찬에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폭탄 발언을 한 것은 배신할 계획을 가졌던 가룟 유다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여 예수님께 각각 묻습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22) 그러자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3) 예수님은 좀 더 강도를 높여서 배신할 유다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24에서,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그런데도 유다는 뻔뻔하게 예수님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한 그릇에 손을 넣으며 만찬을 나눌 때, 예수님은 떡 한 조각을 유다에게 주셨습니다(13:26). 유월절 만찬은 하나가 되는 사귐과 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유다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유다의 발을 씻어 주셨고(13:4-13), 사귐과 우정을 의미하는 떡 한 조각을 떼어서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죄의 눈이 가려진 유다는 마음을 굳게 닫았습니다.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유다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가장 가까운 최측근에게 배신당하는 상실감을 알면서도 끝까지 선대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돌이킬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예수님은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배신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마태복음에서만 유다가 배신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배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처럼 크게 배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삶 속에서 유다처럼 예수님을 소소하게 배신하는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되었으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뒤돌아보면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 때가 많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고, 물질도 주님의 것이고, 자녀도 주님의 것이고,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말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십일조 생활, 자녀들의 예배 생활보다 학원 가서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마음,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지 않고, 나의 만족과 유익을 우선시하는 삶의 태도가 주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만 배신했고, 유다만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를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 믿는 최측근이라도 유다처럼 배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가치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 우리도 가룟 유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던 유다를 마지막까지 품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할 때까지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배신자를 위해서도 죽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배신자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주님의 품으로 돌이켜 주님을 왕으로 모시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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