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08장(내 주의 나라와)
(마 25:31-46, 개정)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잘 표현한 속담입니다. 부모는 모든 자녀를 똑같이 동등하게 내 생명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도우며 우애 있는 모습을 기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서로 돕고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말씀을 해석하는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밤새 기다리기 위하여 기름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기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의 직책을 맡깁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고, 각각의 은사에 따라서 더 많은 영혼의 열매를 맺어서 그들과 함께 성령의 은사를 나눔으로써 제자 삼는 사역에 더욱더 풍성하게 열매 맺으라는 말씀이 아닐까?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봤습니다. 이런 안목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31-32절) 의인에게는 영생 즉, 영원한 축복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악인에게는 영벌 즉,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분 짓는 것에 대하여 본문 37~39절 말씀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라고 의인들이 임금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의인이 자신도 모르게 도왔던 부류들을 나열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돌봐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늘 본문의 말씀과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말씀과 유사해 보입니다. 원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은 무리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강력한 제자훈련의 메시지입니다.
팔복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혼을 살리는 복음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생업이었던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자진해서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영혼의 회복을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선포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나그네 삶을 자청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헐벗었고, 병들었고, 심지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던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해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주의 종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왔던 동역자들의 이야기가 신약성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예수님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듣고 반응하는 자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10:14).
본문 40절에서,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멘. 본문 31절에서도 예수님 자신을 지극히 작은 ‘인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겸손하게 영혼 구원을 위해서 살아갔던 제자들, 예수님의 친형제보다도 더 친형제다웠던 지극히 작은 제자들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독일성서 공회의 주석가들이 내놓은 의견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현재 우리가 돌 봐야 할 대상이 있다면 첫째는 주의 종들이고, 둘째는 삼례성결교회 성도들이고, 셋째는 복음이 필요한 모든 이웃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성도들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면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혼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때 달란트의 비유에서처럼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의 대 사명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을 살리시길 원하십니다. 주께 하듯이 섬기는 높은 차원의 진정한 섬김은 죄로 인하여 헐벗고, 죄에 매여 갇힌 자들, 영적으로 주리고 목마름으로 가난함 가운데 있는 영혼들, 영적 질병에 걸려서 신음하고 있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서 복음으로 위로하고, 복음으로 먹이고, 복음으로 입히고, 영원한 생명수를 나누는 삶이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주께 하듯이 주님의 종들과 삼례교회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서로 돕고 돌아보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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