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장(하나님의 독생자)
(요 20:19-20, 개정)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열 제자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10명의 제자 가운데 없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도마’도 제자들이 모여 있었던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현재 제자들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패배 의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은 힘이 있었고, 능력이 나타났고 승리하는 사역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힘없이 연약한 모습으로 죽어 가시던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면서 제자들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는 예수님이 메시아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하는 도구였을 뿐이지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붙잡혀서 죽을 수 있다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면서 숨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역사하셨던 공생애 3년간의 이적과 기사들을 아무리 경험했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회복시킨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강의 선언과 십자가의 흔적 ‘스티그마’였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만날 힘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힘없는 자들, 좌절한 자들, 밑바닥에 있는 자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는다면 결코 회복과 부흥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죄지은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지고 넘어져도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기에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제자들을 만나 주실 때 했던 일은 ‘회복’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부활의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찾아가 십자가 앞에서 왜 도망갔냐고 꾸짖거나 잘못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굳게 닫힌 문을 뚫고 제자들 가운데 찾아오셔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절) 아멘.
오늘 본문 19절에서의 ‘두려움’과 20절에서의 ‘평강’이 서로 대비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두려움 속에서 평강이 없다면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앞에 다시 서야만 합니다. 나에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죽음의 공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벌벌 떨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들은 영원한 죽음의 공포와 영원한 사망의 그림자 가운데 실패와 좌절과 영원한 심판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주님은 고아처럼 방황하는 우리를 그냥 내 버려두지 않습니다. 찾아가 만나주시고, 죽음의 두려움을 뚫고 찾아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시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20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10명의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복음의 흔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못 박힌 복음의 흔적(스티그마)을 보여주시며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죽어주심으로 우리 죄 갚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가 회복되었고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평강을 맛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 승리로 얻어진 절대적인 평강이기 때문에 두려움과 죽음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혹여나, 여러분 가운데 죽음이 두렵거나 절대적인 평강이 없고, 불안과 초초 가운데 숨어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다시 복음 앞에 나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아멘.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창 자국과 못 자국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평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아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열 명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그들은 세상으로 나갈 힘과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절망 속에서 예수님의 ‘스티그마’ 십자가 흔적은 부활의 참 증거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을 직접 보여주셨기에 더는 죽음의 두려움이 제자들을 묶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은 이 땅의 유한한 가치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참 자유였고, 기쁨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들어간 곳마다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 ‘슬픔이 있었더라, 아픔이 있었더라, 절망이 있었더라.’라는 구절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가 가는 곳곳마다 회복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행전 8장 8절에서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이 오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으로 피했고, 그곳에서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곳마다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복음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인 평안과 기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우리에게 절대적인 기쁨을 주는 복음 앞에 다시 서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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