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장(내 평생 소원 이것뿐)
(빌 3:7-8, 개정)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의 특권과 노력해서 쌓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존경받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관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혈통이나 업적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켜도 죄를 한 번도 짓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의로워질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고백할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바울은 더 많은 그리스도인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울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바울은 값없이 의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자 바울은 가치관도 변화되었습니다.
본문 7절에서, 바울은 “내게 유익하던 것”들에 대해서 해로 여긴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자랑해오던 ‘혈통의 유익과 자신이 성취한 종교적 업적들’이 오히려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 ‘혈통과 자신의 노력’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가졌던 ‘7가지 유익들’을 “해로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7가지 유익들은 할례,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바리새인, 율법에 흠이 없고,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교회를 핍박하던 것을 유대인에게 칭송받았습니다.
“그러나”(7절)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보니, 종교적인 유익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해로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7절 하반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아멘. 유대교에서 7가지 유익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방해가 되었기에 지금껏 누리던 유대교의 7가지 유익을 다 해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귀하기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예수님보다도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주님께 충성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가야 주님이 원하시는 뜻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충성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머리로 알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벧후 3:18, 개정)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아멘.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경험적으로 자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험적으로 예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알아가기 위해 대가를 치렀다는 말씀이 본문 8절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목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외의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전래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두꺼바 두꺼바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이 노래는 현재 헌집을 포기하고 더 나은 미래의 새집을 얻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는 노래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율법을 통해 이룬 업적은 이 땅에서 무너질 헌집에 불과했습니다. 바울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집을 열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새집을 얻기 위해서 헌집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말씀, 기도, 예배, 교제, 전도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물질을 투자해야 하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경험했던 바울은 헌집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 새집을 위해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헌집을 포기하고 하늘나라 새집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더 알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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