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장(십자가 군병 되어서)
(빌 3:18-19, 개정)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승천하셨기에 예수님처럼 신앙의 모범이 되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기에 예수님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 “나를 본받으라”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권고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 안에서 바울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거짓 교사들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본문 18-19절에서, 바울은 다시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안에 있었던 거짓 교사들을 향해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18절) 권고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본문 18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할례를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력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데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노력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유대 배경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켰기에 유대교로부터 핍박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고 유대교와의 타협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유대교와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원의 핵심이 흐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다른 종교적인 행위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을 바울은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아멘. 바울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어떤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끝까지 사랑과 눈물로 권고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눈물로 권고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 배경을 가진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교리보다도 할례와 율법 지키는 것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반대자로 서고 말았기에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며 권고했던 겁니다.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예수님과 원수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결코 하나님의 완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넓고 깊은 죄의 강을 단번에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뛰었던 ‘마크 파월’이 세운 기록은 겨우 8.95미터입니다. 이 기록은 30년 넘게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죄의 강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대해서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아멘.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3:10, 개정)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아멘. (롬 3:23, 개정)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아멘.
율법과 할례를 지켜서 의롭게 되겠다는 발상은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본받지 않았던 ‘십자가의 원수’들의 생활 방식을 본문 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아멘. 이렇게 예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십자가의 원수’들은 몸의 일부인 ‘배’를 신처럼 섬깁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라는 말뜻은 문자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먹고 마시고 자기 욕구만 채웁니다.
또한 ‘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들의 영광을 ‘부끄러움’에 두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부끄러움’은 할례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할례’를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아서는 죄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로마서 2장 29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아멘. 바울은 육체의 할례보다도 회개의 성령을 통해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유대 기독교 배경을 가진 자들을 권고했습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 노력과 힘을 의지하며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 스스로 의로워지고 구원할 수 있다는 유대 배경을 가진 행위 믿음을 따르는 자들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바울이 말했던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였던 “그들의 마침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의 최후는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은 행위 믿음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구원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죗값대로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요 14:6).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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